대가야읍에서 회천을 가로지르는 광주대구고속도로가 지나가는 회천대교 밑을 지나면 장기리 알터 마을이 나오고, 그뒤로 회천로 양옆으로 고령개진농공단지 가 이어진다. 장기리암각화는 농공단지 초입 알터마을에 있는데, 언덕 경사진면에 청동기에서 초기 철기시대의 암각화. `장기리암각화`가 있다.
암각화 주변에는 자그마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암각화란 선사시대 사람들이 그들의 생각이나 바람을 커다란 바위 등 성스러운 장소에 새긴 것을 말한다. 경관 좋은 물가 바위 절벽에 풍년이나 풍어를 기원하고, 다산을 비는 다양한 그림을 바위에 새겼다.공원에는 암각화를 층층히 쌓아 모형물로 만들어 놓았다.고령 장기리 암각화는 경상북도 고령군의 한 마을에서 발견되었으며, 양전동 암각화 또는 마을 이름을 따서 알터 암각화 라고도 하며, 현재는 장기리 암각화로 불리우고 있다. 보물 제605호로 지정되어 있다.암각화는 보호각으로 보호하고 있으며, 높이 3 m, 너비 6 m의 암벽에 새겨진 바위그림의 암각화이다.
당시 고령에 살았던 선사인들은 이 암각화 앞에서 그들의 삶과 죽음의 공포를 잊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바위에 여러가지 그림을 새겼을 테다.그림이 새겨진 바위는 지질학적으로 중생대 백악기 에 형성되었고, 바위그림은 동심원, 십자형, 가면모양 등 여러 종류의 기하학적 무늬로 이루어져 있다.자세히관찰하면 바위벽에 상형문자 형태들이지만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 동심원 4개, 신의 얼굴 또는 칼 손잡이를 표현했다는 암각화(신면형, 귀면형, 검파형) 등 30여개의 그림을 새겼다. 그리고 가면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보이는 무늬가 17개 이상 있으며, 작은 것은 22~20㎝, 큰 것은 30~40㎝이다.가면모양은 머리카락과 수염같은 털이 묘사되어 있고, 그 안에 이목구비를 파서 사람의 얼굴을 표현한 것으로 부적과 같은 의미로 새긴 듯하다. 상징과 기호를 이용해 제단을 만들고 농경을 위해 태양신에게 소원을 빈 농경사회 신앙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십자형은 가로 15cm, 세로 12cm의 불분명한 사각형안에 그려져 있어 밭전자 모양을 하고 있다. 이는 부족사회의 생활권을 표현한 듯하다.우측 상부에 겹쳐져 있는 원형의 동심원은 직경 18~20cm의 삼중원으로 암벽에 총 4개가 분포되 있다. 동심원은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태양신을 표현한 것으로 본다.안내판에는 암각화 주변 언덕에서 채집된 유물에 의해 고령 장기리 암각화도 초기 철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암각화의 주요 무늬인 동심원은 그 이전인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나 선돌에도 자주 보이기 때문에 청동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까지 비교적 오랫동안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