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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행

송강정

2024년 5월 11일

담양에서 광주로 연결되는 29번 국도 쌍교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500m에 송강정주차장이 있다. 그 주변에 송강 정철의 죽록정을 중수하여 송강정이라 이름 붙인 정자가 있으며, 송강이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지었다는 곳이다.

 

 

 

 

광주에서 이곳 송강정주차장까지 마을버스노선이며, 마을버스가 회차하는 종점으로 주차장이 넓다.
송강정은 주차장 좌측으로 자연석을 가지런하게 다듬어 만든 계단을 몇 굽이 올라가야 하는 높은 곳에 있으며,
평지 숲길을 따라 돌아서 가는 길도 있다.
조선시대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인 진영에 속했던 송강 정철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선조 17년(1584년) 동인의 탄핵을 받아 대사헌직에서 물러난 후 담양군 고서면에 초막 죽록정을 짓고 지냈다. 정여립의 난이 불러온 이른바 기축옥사(己丑獄事)로 동인 1000여 명이 화를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송강 정철은 이곳에 머물면서 식영정을 왕래하며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비롯하여 많은 시가와 가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정면에 ‘松江亭’(송강정)이라고 새긴 편액이 있고, 측면 처마 밑에는 ‘竹綠亭’(죽녹정)이라는 편액이 있다.
정자의 배치는 동남향으로 앉아 있으며, 건물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고, 단층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중재실이 있는 구조로, 전면과 양쪽이 마루이고 가운데 칸에 방을 배치하였다.
옆뜰에는 임금에 대한 충정을 표현한 ‘사미인곡’ 시비가 서 있다.
윤선도, 박인로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시인 중 한사람으로 불리는 송강 정철은 가사 문학사에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다. 송강 정철의 주요 작품으로 관동별곡, 성산별곡, 훈민가,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이 있는데, 이 중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송강정에서 지었다니 송강 정철의 정취를 느끼는데 빼놓을 수 없는 곳 같다.
송강정 주변의 소나무는 마치 정자를 향해 인사라도 하듯 몸을 기울이고 있다. 거의 드러눕다시피 한 것들도 있다. 짙은 초록의 소나무숲을 두르고 있는 정자는 담백하기 이를 데 없다.
조선시대의 천재시인 송강 정철(1536~1593). 그가 남긴 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성산별곡 등은 국문학사 최고의 시가작품으로 꼽을 만 하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의 정철은 강직했지만 정적을 향해서는 무척이나 가혹했다. 그래서인지 고난으로 굴곡진 삶을 살았다.
파직과 유배를 거듭하던 정철은 쉰여덟의 나이에 강화도에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송강정은 정철이 죽고 난 뒤에 허물어져 폐허가 됐다. 지금의 송강정은 예전의 정자가 무너진 지 200여 년 뒤인 1770년에 정철의 후손에 의해 다시 지어진 것이란다.
송강정에서 약 8km에 창평향교에 가봅니다. 향교건물로는 보물로 지정된 곳이 많지 않은데, 대성전과 명륜당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어 그 건물을 답사하러 갑니다. 교촌마을 전방 500m에 향교홍살문이 있습니다.
마을앞을 흐르는 증암천 교산교를 건너 마을뒤쪽 산 중턱에 자리잡은 창평향교를 올려다 본다. 향교 앞에도 홍살문이 있으며, 홍살문 우측으로 1칸짜리 건물은 어떤 용도인지 모르겠다.
향교 담장밑으로 비석들이 줄지어 서 있고 명륜당 앞으로 수령 350년된 두 그루의 향나무가 푸르럼을 더하고 있다.
향교는 보수중으로 답사가 불가능 하다.
이왕 먼길을 왔으니 향교 담장을 따라 한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향교는 포곡형의 성처럼 둥그런 원형안에 건물을 배치하여 일반향교와 비교되는 형국으로,
경사면에 위치한 좁은 입지로 인해 전형적인 향교 건축물의 배치구조에서 벗어나 대성전과 명륜당, 동재, 서재가 ‘ㅁ’자형으로 배치된 독특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창평향교는 조선시대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설립연대는 미상이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그 뒤 중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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