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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여행

부용대

2024년 5월 29일

안동 하회마을을 둘러 보았으니 강건너 부용대에 올라가 하회마을을 내려다 봐야 되지 않겠어요. 병산서원도 다녀왔고, 부용대 주변에 있는 화천서원과 옥연정사까지 덤으로 답사하겠습니다.

 

 

 

하회마을 강변에서 헤엄쳐서 화천서원에 왔냐고요? 그런건 아니고요 병산서원에서 이곳 화천서원까지 약 8km를 차량을 이용하여 왔습니다. 화천서원 정문 유도문은 잠귀져 있다.
다시 되돌아 가서 화천서원 전사청문으로 들어 간다. 부용대는 야자매트가 푹신하게 깔린 우측으로 올라 가야 된다.
화천서원 전사청은 현재 음식집으로 운용되고 있는지 살림살이가 많이 보인다.
전사청에서 협문을 통해 화천서원으로 들어 가기전 전사청 뒤로,
사당 경덕사로 들어 가는 신문이 있으며,
경덕사에는 1786년(정조 10)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유운룡, 유원지, 김윤안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화천서원은 조선 중기 퇴계학문을 수학한 겸안 류운룡(1539-1601년) 선생의 넋을 기리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유림의 뜻을 모아 1786년 건립되었다. 서원 철폐령으로 강당과 살림집으로 쓰인 주소만 남기고 헐게 되어 한동안 화천서당으로 불렸으나 이후 서원의 훼철을 아쉬워하던 후손들이 1966년부터 기금을 모아 여러 건물을 복원하였다.
문루 지산루와 동재.
강당 숭교당과 서재.
화천서원 인근에 있는 옥연정사를 찾아간다. 옥연정사는 부용대 동쪽 강가에 자리 잡고 있다.
옥연정사는 유성룡이 `징비록`(국보, 1969년 지정)을 집필한 곳으로 전하여오는 바, 그의 만년에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문간채는 동남향하여 정면 6칸, 측면 1칸이고, 이곳에는 측간과 광들이 자리 잡고 있다.
대문간을 들어서면 안쪽 서쪽으로 동서향으로 면한 살림채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크기로 자리 잡고 있다.
살림채의 서쪽에는 별당채가 남향하여 하회마을을 굽어볼 수 있도록 자리 잡고 있다.
별당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반의 별당은 동쪽에 대청을, 서쪽에 2칸 크기의 온돌방을 두었다. 그리고 전면에 개방된 반 칸 폭의 툇마루를 두었는데, 유성룡은 주로 이곳에서 집필하였다고 한다.
별당채의 서남쪽에는 一자형 사랑채가 남향하여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 크기로 동쪽부터 방 1칸, 대청 2칸, 방 1칸을 두고, 앞뒤로 반 칸 폭의 퇴를 두었다. 담장은 강가 전면과 안채 남측 벽 중간과 사랑채 강가로 길게 쌓았다.
담장은 계속 이어져 사랑채 서쪽에 남북으로 길게 쌓고 일각대문을 달았다.
일각대문 밖에는 조그만 공터가 있으며 소나무우측으로 부용대로 올라 가는 산길이 있었는데, 지금은 폐쇄되었다.
강가로 내려와 옥연정사를 보고 있다. 낙동강 물길 따라 눈부신 벼랑이 휘돌아 흐르는 부용대 절벽밑에 정사를 지어 올리기에 절묘한 곳도 없을 터. 저마다의 풍광과 사연을 간직한 채 아득한 세월을 버티고 있다.
옥연정사를 답사한후 부용대로 향한다. 오월말 이렇게 더웠나 싶다. 야트막한 능선을 올라가는 것도 버겁다.
많은 사람들이 짓이겨 놓아서 풀 한 포기 없는 부용대다.
부용대는 하회마을 서북쪽 강 건너 해발 64m 절벽으로 정상에서 하회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부용은 연꽃을 뜻한다.
부용대 정상에 올라서면 마을 전체를 조망하는 수려한 경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부용대에서 바라보는 하회마을 서쪽 강가다. 우측 숲속 어딘가에 겸암정사가 있다.
가장 한국적인 곳으로 마을을 휘감아도는 낙동강가에 웅장하게 솟아오른 천혜의 자연 부용대에서 바라 본 하회마을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려 했던 우리 선조의 마음이 건축으로 형상화되어 있는 모습들이 마음 깊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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