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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여행

도산서원

2024년 5월 29일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1501-1570)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1574년(선조 7)에 지어진 서원으로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위치하고 있다. 도산서원은 건축물 구성면으로 볼 때 크게 도산서당과 이를 아우르는 도산서원으로 구분된다. 도산서당은 퇴계선생이 몸소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고,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건립된 사당과 서원이다.

 

 

 

도산서원은 안동에서 청량산으로 가는 도중 도산서원삼거리에서 우측 안동호 상부 가변길로 1.5km들어가면, 그곳에 매표소및 주차장이 있으며 약 400m걸어 들어가야 한다.
도산서원은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 9곳 중 하나다.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 유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데는 건축물 보존이 큰 역할을 했으며, 서원은 주지하다시피 조선시대 교육열의 본산이다. 제향 기능, 강학 기능, 유식 기능이 주류를 이루고 수려한 자연경관과 우아한 목조건물이 조화를 이룬다.
도산서원 양편 산기슭에는 절벽이 있는데, 퇴계가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몸과 마음을 수양하기 위해 산책하던 곳이다. 퇴계는 서쪽 절벽을 `천광운영대`, 동쪽 절벽을 `천연대`라고 불렀다. 두이름에서 주변의 절경과, 퇴계가 말년에 이곳에서 자연의 이치를 벗 삼아 학문을 성취하려던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 절경지역은 안동댐으로 수위가 상승하는 바람에 절경이 사라졌다.
서원 건너편에는 낙동강 물길이 안동댐 건설로 호수가 된 곳에 섬처럼 우뚝 솟은 곳에 한 건물이 보인다. 정조 때 이황의 학덕을 기리며 영남 지역 선비들에게 특별 채용 시험을 실시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시사단(試士壇)이다. 안동댐으로 수몰되기 전에는 도산서원과 마주 보이는 강변의 소나무가 우거진 곳에 비각이 세워져 있었는데, 1975년에 원위치에 10m 높이의 돌축대를 쌓아올린 뒤 원형대로 옮겨 지었다.
도산서원 앞으로 넓은 마당지역이다. 안동댐으로 5m이상 성토를 하여 옛 모습은 없었졌지만 동쪽 절벽 `천연대` 가 보인다.
이황은 조선 중기 주자성리학을 발전시킨 조선의 유학자이며, 호는 퇴계, 단양군수, 풍기군수를 지냈으며, 성균관대사성으로 임명되고 여러 차례 벼슬을 제수 받았으나 대부분 사퇴했다. 1560년 도산서당을 짓고 독서, 수양에 전념하면서 많은 제자를 길렀다. 선조에게 `무진육조소`를 올리고 사잠, 논어집주, 주역등을 임금 앞에서 강론했으며 `성학십도`를 저술해 바쳤다. 70세의 나이로 죽었다.
도산서당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이황 생전에 있었던 도산서당, 역락서재, 농운정사, 열정등은 선생의 체취를 직접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서당문안으로 들어가면 좌측에 능운정사로 들어가는 문이 보인다.
농운정사는 제자들의 기숙사로, 서당의 서쪽에 위치한다. 퇴계선생이 직접 기본 설계를 하고 당시 용수사 승려였던 법련과 정일을 임명하여 건립하였다고 한다. 工자형의 대칭적 건물로 2개의 공간으로 나뉘는데, 각각 2칸의 온돌방과 앞으로 돌출한 마루 1칸,뒤쪽에 봉당 1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 앞 기단 월대에는 전돌을 깔았다.
도산서당은 선생이 몸소 제자를 가르치던 곳으로 1561년에 완공하였다.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퇴계가 직접 기본 설계하였다고 전해진다. 사색과 연구를 계속하며 제자를 교육하던 단칸방을 '완락재(玩樂齋)'라 하였으니 뜻은 '완상하여 즐기니 족히 여기서 평생토록 지내도 싫지 않겠다.'이고, 제자를 가르치며 휴식을 취하던 마루는 '암서헌(巖栖軒)'이라고 하는데, '학문에 대한 자신을 오래도록 가지지 못해서 바위에 깃들어 조그마한 효험을 바란다.'라는 겸손의 뜻을 담고 있다.
서당앞에는 께끗한 벗이 있는 연못이라는 정우당의 모습이다.
도산서당 좌측 문안으로 들어가면 하고직사 건물이 있다.
하고직사는 도산서당과 기숙사, 서재, 부속시설을 관리하고 식사 준비를 위해 지어진 건물로 노비들이 거처했다. 지금의 건물은 1932년 옮겨지은 것으로, 원래는 6칸의 'ㄷ' 자 건물이었는데 이건하면서 동서 날개부가 1칸씩 증축되었다. 처음에는 서당과 같은 공간에 있었으나 서원 건립으로 진입로가 놓인 까닭에 농운정사와 함께 서당에서 분리된 모습이 되었다.
도산서당 위쪽으로 진도문을 중심으로 서광명실과 동광명실이 나누어져 있다. 도산서당의 위쪽으로 서원을 건립하면서 도산 서당과 농운 정사의 사이에 진입로가 만들어졌다. 진도문은 이 진입 공간을 따라 서원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아래쪽의 서당 영역과 서원 영역을 구분하고 있다. 외부와 경계를 짓는 문으로 편액을 걸어 상징적인 예교의 의미를 갖게 하였다.
광명실은 서책을 보관하고 열람할 수 있는 오늘날의 도서관인데 현판은 퇴계선생 친필이다. 습해를 방지하기 위해 누각식으로 지었다. 1819년(순조19)에 세워진 동광명실에는 역대 왕의 내사서적과 퇴계 선생이 친히 보시던 수택본을 보관하였다. 원래는 동광명실만 있었으며 서광명실은 근대 들어 증건하였다.
도산서원 정문 진도문.
진도문 안으로 들어서면 전면에 전교당으로 서원의 강학 건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건물이며 원장실과 강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교당 정면의 현판은 조선 중기의 명필 한석봉의 글씨로 1575년 선조로부터 사액 받은 것이다. 보물 제 210호로 지정되었다. 전교당 전면 양 옆으로 원생의 기숙소로 서재 홍의재, 동재인 박약재 가 있다.
상덕사로 들어가는 사당문으로 내삼문이라고도 불린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삼문 형식으로 상덕사와 같은 시기에 지어졌다. 계단 때문에 문 안쪽과 높낮이의 차이가 생겨 전면 기둥을 1단 낮은 자리에 세웠다. 이러한 이유로 기단 아래까지 기둥이 내려오는 특이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역태극 문양에 단청을 하였다.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 성덕사는 관람을 못했다.
전교당 동편에 위치한 서원의 출판소로 `장판각`은 목판을 보관하는 곳이다.
양옆으로 오죽이 있는 출입문은 전사청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전사청은 사당에서 제사 지낼 때 쓰이는 음식인 제수를 차리고 보관하는 곳으로, 음식의 재료를 날라오는 고직사와 사당 사이에 위치한다.
담장 넘어로 상고직사의 건물이 보인다.
서당 영역에서의 고직사와 구분하기 위해 서원의 고직사를 상고직사라고 한다. 상고직사는 서원의 관리와 식사 준비를 위해 지어진 건물로 노비들이 거처하던 곳인데 일반 살림집의 형태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남북으로 긴 'ㅁ' 자형을 이루며 온돌방 7칸에 창고, 부엌 등을 합쳐 총 21칸으로 되어 있다. 전사청과 연결되어 있는 동쪽 통로와 하고직사로 연결되는 남쪽 통로 옆에 각각 부엌을 배치하여 생활에 편리함을 더하였다.
서원을 관리하는 식솔이 많아 고직사의 건물이 상당히 큰편이다.
상고직사에서 내려다 보는 도산서원 부속건물이다. 좌측으로 하고직사와 농운정사이며, 우측으로 유물전시관(옥진각)과 역락서재의 건물 지붕이보인다.
진도문에서 내려다 보는 전경이다.
진도문에 매단 북은 원생들에게 알리고자 했을시 사용했다.
옥진각은 퇴계선생의 유물전시관으로 1970년에 완공되었다.
옥진각은 덕과 성을 갖춘 집이라는 뜻이다.
옥진각에는 퇴계 선생이 생전에 쓰던 베개와 자리를 비롯한 많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또 매화 벼루, 옥서진, 서궤 등의 문방구에서는 학문 연구와 제자 양성에 힘을 기울였던 선생의 손길이 느껴진다. 이외에도 청려장, 매화등, 투호 등과 함께 혼천의 도 전시되어 있다.
도산서원 배치도.
전시관의 유물이 대부분 복제본이어서 문화재적 가치는 별로 없다. 단지 교육적인 면에서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
역락서재는 도산서당과 같은 시기에 건립된 건물이다. 서원의 아래쪽에 위치하며, 담장이 둘러져 독립 된 공간으로 되어 있다. 서당의 제자들을 위한 기숙사로, 퇴계의 제자 정사성을 비롯한 뜻있는 제자들이 힘을 합쳐 세웠다.
온돌방의 서쪽 반 칸을 비워 아궁이를 설치한 점이 특이하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단정한 건물로 현판글씨는 퇴계선생의 친필이다.
네모지게 조성된 석조 우물 이름은 '열정'이라 하였다. 도산서당 시절부터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로, 열정이란 이름은 `역경`에 나오는 `물이 맑고 차가우니 마실 수 있다`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버드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냇가에서 흔히 자라는 왕버들이다. 이나무는 퇴계선생이 도산서당을 지을 시절부터 있던 것으로 , 안동댐 조성 시 수몰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서원 전면부 마당을 5m 가까이 성토하는 과정에서 나무밑둥 부분이 대부분이 땅속에 묻혔다.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 9곳 가운데 제향자가 손수 짓고 생활한 곳은 도산서원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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