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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여행

무섬마을

2024년 5월 29일

무섬마을은 안동 하회마을, 예천 회룡포와 함께 경북 3대 물돌이 마을로 꼽힌다.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의 한국어 이름으로 삼면이 내성천과 접해있는 전형적인 물도리 마을로 마을 앞을 돌아나가는 내성천은 잔잔하며 산과 물이 태극모양으로 서로 안고 휘감아 돌아 산수의 경치가 절경을 이룬다. 조선중기 마을에 처음 들어와 터를 잡은 사람인 `박수`와 `김대`가 자리를 잡은 이래 반남박씨와 선성김씨의 집성촌으로서 유서 깊은 전통마을이다. 전통 가옥 40여 채가 있으며, 350년이 넘은 만죽재고택이 가장 오래됐다. 

 

 

 

외나무다리 건너에는 새로 조성해 놓은 주차장이 있다. 보통 그곳에 주차를하고 외나무다리를 건너 오지만, 늦은 시간에 와서 수도교를 건너 마을 둑방길에 주차 후 맨 먼저 외나무다리로 왔다. 폭 30cm 길이가 무려 150m에 이른다. 까짓 것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걸었는데, 막상 물이 흐르는 구간을 지나갈 때는 폭이좁아 떨어질것만 같다 중심잡기가 어려워 멈칫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오른쪽으로는 마을을 휘돌아 내성천이 흐르고 가운데는 둑방길이, 그리고 왼쪽에 마을이 납작하게 앉아있다. 소백산, 태백산 등에서 발원한 내성천은 수도리 마을을 한바퀴 감싸 돈 후 예천 회룡포 등을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하천이다.
그림에서 보듯이 350도 정도로 마을을 휘돌아 나간다. 그 모습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섬과 같다고 해서다. 무섬이란 물 수(水), 섬 도(島)로 '수도'리 또는 '물섬'이다. 그러나 물섬은 발음이 어려워 'ㄹ'을 버리고 '무섬'이라고 말한단다.
마을 맨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관람을 시작한다. 일제강점기 뜻있는 주민들에 의해 건립된 `아도서숙`(亞島書塾)은 이 마을에서 이름을 빛낸 애국지사들 활동 거점이었다. '아도'는 아세아 조선반도 내 수도리를 줄인 말이고 '서숙'은 옛날 서당을 가리킨다. 김화진 주도로 1928년 10월 문을 열어 1933년 일제가 강제로 폐쇄할 때까지 무섬마을 교육기관이자 항일운동 거점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선성김씨의 입향조 김대를 추모하기 위해 지어진 집이다. 김대는 벼슬에는 뜻을 접고 내실을 다지고 후생에 힘쓰면서 그가 살고 있는 집을 정자 삼아 ‘치류정’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치류정밑으로 초가는 김종억 가옥이다.
무섬식당 옆건물 관광안내소입니다. 길을 따라 골목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안내소 뒷 건물은 김갑진 가옥입니다.
계속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면 우측으로 주실고택(김기현 가옥)입니다.
현재 민박집으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담장도 없는 노지에 항아리를 단정하게 놓아 두었습니다. 마을 전체가 친인척으로 구성되었으니 도둑이 있겠습니까.
원래 이자리에 호랑이를 닯은 괴목이 있었는데, 그자리에 호랑이를 그린 기와만 있네요.
길 끝에는 백송당(김기현 가옥)이 있습니다.
다시 돌아나와 관광안내소 우측 건물을 관람합니다. 개항기 의금부도사를 지낸 해우당 김락풍이 건축한 주택으로 해우당고택 솟을 삼문입니다. 해우당 고택은 1876년 의금부 도사를 지낸 해우 김낙풍(1825∼1900)이 지었다고 합니다. 이 집은 내성천에 놓인 수도교를 건너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고택입니다.
현재는 ㅁ자형 평면의 안채 1동만 남아 있는데, 6칸 대청이 중심에 있고 우측에 2칸의 안방, 좌측에 바깥 주인이 거처하는 방과 아랫상방이 있으며 안으로 안방이 있다. 구조상에서는 별다른 특색이 없으나 평면 구성에서는 종가로서의 다용도와 기능이 고려되었던 듯하다. 현판 글씨는 흥선대원군이 쓴 것으로 알려졌다.
섬계고택 1730년대 건립하였으며, '섬계'는 무섬마을의 옛 이름입니다. 현재의 주인 김동근의 父 김두한이 택호로 사용하여 오던 것을 사위 이영직이 '섬계고택'이라는 서각을 만들어 단 것이 그대로 당호가 되였습니다.
섬계고택은 24칸의 전형적인 ㅁ자형 가옥으로서 사랑채는 사랑방과 사랑마루 등으로, 안채는 안방과 대청마루, 상방, 부엌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집 안 곳곳에 마굿간과 성주단지, 장독대 등 옛 생활의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1923년에 지었다는 살림집 박천립 가옥(현 소유주의 고조부인 박승후의 호를 따 사무당으로도 불린다). 지붕 용마루 양쪽에 까치둥지와 비슷한 모양의 구멍을 내어 공기가 잘 통하게 만든 까치구멍집이다. 이 집은 초가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무섬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 '만죽재', 병자호란 후 은둔 선비의 삶을 실천하고자 이 마을에 든 반남 박씨 박수가 1666년 건립했다는 집이다. 무섬마을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집이 9채 있는데 만죽재도 그중 한 곳이다. 무려 360여 년의 역사를 품고 있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ㄷ자형' 안채와 '一 자형' 사랑채가 '口자형'을 이룬다.
만죽재에서 마을길을 따라 내성천이 있는 둑방으로 나오면 카폐가 있는데, 점방옆으로 꾸며놓은 정자입니다. 예뻐서 담아봤습니다.
오헌고택은 반남박씨 오헌 박제연의 고택으로 `오헌(吾軒)은 '나의 집'을 뜻합니다. 문과에 급제한 후 병조참의를 거쳐 병조참판에 임명되었고, 동지춘추관사, 지의금부사를 겸임하였습니다.
골목길을 돌아 다니면 좁은 골목마다 100년 넘은 집이 열여섯 채, 그리고 문화재와 민속자료로 지정된 집이 아홉 채다.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생생한 과거다. 낮 동안 놀러 온 바깥 사람들에게 마당까지 개방된 이 집들은 밤에는 고택 체험을 위한 숙소로 쓰인다.
무송헌 종택은 이 마을 선성김씨 입향조인 `김대`가 터를 잡고 살았던 종택이다.
세종 때 천문학자로 큰 업적을 남긴 무송헌 김담(1416~1464년)의 종손이어서 무송헌종택이라 부른다. 건물은 사랑채와 안채가 ‘ㅁ’자형을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이 지방 가옥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사랑채의 높이가 낮아 툇마루에 난간을 두르지 않았다.
고택 뒷편에는 김담을 비롯한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
골목길 사이에 농당고택 과 김정규가옥.
김정규 가옥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에 지은 집으로 민박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마당 넓은 집 김광옥 가옥, 위당 고택이라고도 불리며, 오래전 박씨 마을이었던 무섬마을에 처음 들어와 정착한 예안 김씨 입향조의 집이었다고 합니다.
김덕진 가옥
월미산 초당 김규진 가옥은 조선 후기에 지은 집이나 수해로 떠내려가서 1930년에 새로 지은 살림집이다. 역시 까치구멍집 구조다.
금강초당(김창근 가옥)
김위진 가옥(조은 구택)은 19세기 말에 지어진 한옥으로, 중앙 대문을 중심으로 왼쪽에 사랑채, 오른쪽에 마구를 배치한 전형적인 ‘ㅁ’자형 양반가옥이다. 현재 소유자가 거주하고 있기 때문인지 가옥의 상태는 매우 양호한다. 이 가옥을 지은 김휘윤의 호를 따서 조은 구택 이라고도 한다.
김덕진 가옥(아석 고택)은 고종 22년에 지어진 살림집으로, 원래 박남 박씨 가문에서 지었지만, 신성 김씨 입향조 김대의 종손인 김낙기의 부인이 1910년대에 매입한 후 신생 김씨 가문에서 대대로 살았다. 김낙기의 손자인 아석 김원규의 호를 따서 아석 고택으로도 불린다.
기와와 초가의 어울림을 보노라니 무섬마을에 특징이 있습니다. 농사지을 농토가 없으며, 풍수지리상 행주형으로 우물이 없습니다. 마을 구성원이 친인척으로 담장과 대문이 없는 편 입니다. 수해가 잦아 대부분 사당을 두지 않고 위패를 모시는 감실을 두었답니다.
이 마을은 수백년 동안 두 집안의 집성촌이 된 마을로 조선후기 전통가옥과 문화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었 마을 자체가 문화재입니다.
마을 우측 끝자락에 무섬자료전시관, 한옥체험수련관을 운용하고 있다.
무섬자료전시관 둑방 넘어에 아담한 외나무다리 가 또 하나 있습니다. 노란꽃 넘어에 아주 말끔한 풍경으로 찾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는 곳이다. 무섬 제 2 외나무다리입니다.
시집올 때 가마 타고 한 번, 죽어서 상여 타고 한 번 지나간다는 애환이 서린 외나무다리. 무섬마을에서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입니다. 어느 사람도 쉽게 마을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래서 "무섬마을에 시집오면 죽어서야 상여를 타고 나갈 수 있다"는 말까지 생겼다고 한다.
옛말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라고, 했지만 이곳에선 누구든지 배려와 겸손을 배운다.
편안한 마음으로 이집 저집 구경하다보니 어느정도 마을 구경을 다한것 같다. 특별함도 좋지만 일상에 만족하는 삶과 맞닿아 살고 있는 무섬마을. 세월이 숨을 멈춘 듯한 한옥마을, 태백산·소백산 줄기를 끼고 모래톱 사이로 휘감아도는 강물, 운치 있는 외나무 다리 등 무섬엔 아직도 옛것의 아름다움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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