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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여행

봉정사

2024년 5월 29일

천 년과 마주한 시간을 기억하는 날, 불교적인 신성함 말고도 알 수 없는 존경스러움과 고귀함의 향기가 풍기며, 평범하고 무심한 듯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가치를 발휘하는 안동의 봉정사를 재차 방문합니다.

 

 

 

오늘같이 더운날 일주문까지 차를 몰고 올라올수 있었던 것은 평범한 주중으로 사람들이 몰리지 않았기에 왔습니다. 천등산으로 둘려쌓인 마지막 골짜기에 자리잡은 봉정사는 1972년 극락전에서 상량문이 발견됨으로써 672년(문무왕 12) 능인대사가 창건했음이 밝혀졌다. 천등굴에서 수학하던 능인 대사가 도력으로 종이로 봉을 만들어 날렸는데, 이 봉이 앉은 곳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세계유산인 봉정사는 2000년 2월 대웅전 지붕 보수공사 때 발견된 묵서명을 통해 조선시대 초에 팔만대장경을 보유하였고, 500여 결의 논밭을 지녔으며, 당우도 전체 75칸이나 되었던 대찰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한국을 방문하면서 1999년 4월 21일에 봉정사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알려져 있는 1962년 국보로 지정된 극락전을 비롯하여, 2009년 국보로 지정된 대웅전, 1967년 보물로 지정된 화엄강당과 고금당 등의 지정문화유산과 무량해회· 만세루· 우화루· 요사채 등 21동의 건물이 있다.
빼곡한 참나무숲 사이로 들려오는 새소리와 신록을 만끽하며 절집으로 향하는데, 안내판이 보인다. 서로다른 느티나무가 세월이 흘러 뿌리가 얽히고 설혀 통일나무가 되었단다. 즉 나무도 통일을 이루는데 우리의 소원인 남북통일 염원을 담아 통일나무라 명명했다는 내용이다.
보통 일주문 다음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문이 나오지만, 이곳은 물이 만나는 합수 명당이라 사천왕문이 없단다.
막돌계단을 올라 만세루를 통과하면 본당이 나오는데, 만세루를 통과하는 것은 사바세계를 떠나 부처의 세계에 귀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단다.
돌계단을 오르면 돌담을 낀 2층짜리 누각인 만세루가 고풍스러운 모습으로 객을 맞는다. 아래층은 통로, 위층은 목어, 법고, 운판 등 불교의 사물이 걸려 있다.
만세루 누각밑 마지막 계단을 올라서면 만날 수 있는 대웅전의 모습은 봉축행사로 걸어놓은 연등으로 실망감이 앞선다. 대웅전은 만세루와 직선상에 배치되어 있으며, 대웅전 앞마당을 향하여 화엄강당(보물)과 종무소가 마주보고 서 있다.
온화한 자태의 대웅전은 무심코 살아온 쳔 년의 삶을 담고 있다. 봉정사 대웅전은 극락전보다 화려한 팔작지붕이며, 주불전으로서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다. 일반적인 불전과 달리 정면에 툇마루와 난간을 설치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내부에 있는 불단은 고려 말기인 1361년에 제작된 것이며 단청도 고려시대의 수법을 일부 간직하고 있어 가치가 높다.
봉정사 무량해회
대웅전의 서쪽에는 극락전, 삼층석탑, 고금당이 별도의 영역을 이루고 있다. 소박하게 보이는 극락전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금당은 196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단층건물로, 지붕은 맞배지붕을 올렸다. 삼층석탑은 상하기단위에 3층 탑신부를 올린 것으로, 건립 연대는 극락전과 같을 것으로 추정되며 전체적으론 고려 중엽 석탑양식을 잘 갖추고 있다.
극락전은 국보(1962.12.20 지정)로 앞면 3칸, 옆면 4칸의 단층맞배지붕 건물이다. 크기가 다른 자연초석 위에 배흘림 기둥을 세웠다. 정면 가운데에 널빤지로 판장문을 달고 양 옆에는 광창을 내었으며, 나머지 벽면은 토벽으로 막아 감실처럼 만들었다.
지붕 무게를 분산시키는 짜임새를 기둥 위에만 만든 주심포 양식의 건물로 고려시대 지어졌지만, 삼국시대의 건축양식을 따른 점이 특징이다.
아미타불을 전각의 가운데에 이동식 불단을 설치해 그 위에 봉안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천장은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는 연등천장이다.
1972년 해체수리시 발견된 상량문은 1625년(인조 3) 중수하면서 쓰여진 것인데, 1363년(공민왕 12)에 중창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늦어도 13세기에는 이 건물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며 주심포계의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건물이다.
동종각으로 네 가지 법구인 사물 중 지옥에 빠진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울리는 범종만 만세루 오른쪽에 따로 떨어져 있다.
고색창연한 전각을 둘러 본 후 다시 만세루 앞에 왔다. 이 누문의 명칭은 원래 `덕휘루`였는데, 지금의 명칭으로 개칭된 것은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로,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앞면에서 보면 2층이나 지형의 경사를 이용하여 뒷면은 단층으로 처리하였다.
만세루의 2층에는 물속 생물의 구원과 해탈을 위해 두드리는 목어와 네발 달린 짐승의 구원과 해탈을 비는 법고, 날아다니는 짐승을 구원하는 운판이 걸려 있다. 우물마루 바닥에 평난간을 둘렀다.
천정을 받치는 높낮이가 다른 기둥과 기둥을 끼워놓았다. 설명을 해 주시는 분의 어휘력에 그져 듣고만 있었는데, 설명이 방대해 감탄만 하고 말았다.
만세루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이다. 누 아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속세의 시름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봉정사 승려들이 생활하는 요사채 무량해회와 대웅전 사이 뒷 방향으로 영산암이 있다. 봉정사 영산암도 꼭 관람하길 권한다.
요사채 벽면에 영국 여왕이 방문하셨던 사진들이다.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촬영한 암자 영산암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이다.
조선시대 정원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는 영산암이란 소문난 곳에 왔다. 조그마한 암자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큰 건물이다.
영산암의 영산은 석가모니가 설법하던 인도의 영축산을 말한다. 영산암의 정문을 겸하는 우화루는 ‘꽃비가 내리는 누각’이란 뜻이다. 부처가 영축산에서 설법할 때 꽃비가 내렸다는 전설에서 따온 이름이란다.
우화루의 작은 문으로 허리를 굽혀 들어가면 고택의 정원과 같이 다양한 신세계가 펼쳐진다. 3단으로 된 마당 아래쪽에 풀꽃이 있고, 가장 넓은 중간 마당은 바위 위에 솟아오른 소나무를 중심으로 배롱나무와 석등이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영산암을 구성하는 크고 작은 전각 6동 가운데 자리잡은 마당 정원은 ‘한국의 10대 정원’으로 꼽힐 정도로 아름답다. 소나무와 배롱나무, 맥문동 같은 화초가 어우러져 정원은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준다. 송암당 툇마루에 앉으면 아담한 소나무와 배롱나무, 소박한 풀꽃이 아늑하게 보이고 마당 가운데 서서 삼성각 쪽을 바라보면 하늘로 뻗은 소나무 가지와 바닥의 기암괴석이 선계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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