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논산·강경 일대에는 죽어서 염라대왕을 만나게 되면 `너는 이승에 살 때 개태사의 가마솥, 관촉사의 미륵불, 강경의 미내다리를 보았느냐`고 묻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밑거나 말거나 얼마나 대단하면 그런 전설이 전해내려오는지 궁금하여 미내다리를 찾았다. 68번 지방도로를 따라 강경읍네로 들어가기 전 강경천을 가로지르는 강경천교 못가서 제내교로 가야만 둑방길로 진입할 수 있다. 하긴 네비가 가르쳐주는 길로 가면 된다.
강경천 의 강둑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그 옆으로 작은 미내다리가 보인다. 조선 영조 때 만든 충청도와 전라도를 잇는 다리였다.
미내다리가 있던 강경천은 구불구불한 사행천이였는데, 일제강점기 수로를 정비해 굽은 강을 곧게 펴자 제방 위치가 변하여 현재의 다리모습이 되었다. 지금은 다리 아래 물이 말라 다리로써 기능하지 못하지만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처럼 아름답습니다.
다리 주변에서 낚시하시는 분의 말로는 이곳 하천으로 강태공및 다리를 구경하시는 분들이 많아 논산시에 강력하게 건의하여 주차장을 만들었단다.
머리 떨어져 봐도 측면 무지개 틀과 잘 다듬어진 벽석이 세련되고 무척 화려하다. 미내다리 뒤로 호남선 KTX 철길이 보인다.
미내다리는 길이 30m, 높이 4,5m, 너비 2.8m의 3경간 무지개다리다. '삼남 제1교'라 불렀다는 기록에 걸 맞는 규모다. 석재는 밝고 환한 화강암이다.
이 다리는 3개의 홍예(무지개모양)로 된 돌다리인데 가운데 홍예가 가장 크고 남북쪽의 것이 작다. 받침을 긴 장대석으로 쌓고 그 위에 홍예석을 둘렀다.
긴돌을 가지런히 쌓아 3칸의 무지개모양을 만들고, 그 사이마다 정교하게 다듬은 돌을 가지런히 쌓아 올렸다. .
무지개 틀 쐐기돌이 귀틀돌 밖으로 돌출되어, 정점에서 멍엣돌 역할을 한다.
벽석에 결구된 멍엣돌도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여기에 귀틀돌을 결구시켜 눈썹 모양 유려한 곡선을 탄생시킨 것이다.
난간 경계석에는 여러 가지 꽃무늬를 새긴 듯하나 마멸이 심하다.
미내다리 가운데 무지개 쐐기돌 3개 무지개 중 가운데 무지개 쐐기돌의 한쪽 끝이다. 눈은 장승이고 코는 뭉툭하며, 얼굴 양 옆으로 귀와 갈기를 새겨 넣었다. 혹자는 호랑이라 말하지만, 도깨비처럼 보인다.
북쪽 무지개 틀 쐐기돌 한쪽 끝엔 용머리를 새겨 넣었다.
미내다리 상부로 올라 가 본다. 혹여나 무너질까 약간 조바심도 나지만.
상판은 화강암을 다듬어 우물마루를 깔았다. 이다리를 통해 마차등 많은 사람들의 역사를 간직한 다리다.
비문에 의하면 1731년(영조 7) 강경촌에 살던 석설산. 송만운 등이 주동이 되어 황산의 유승업. 설우. 청원 등이 이 공사에 진력하여 시작한 지 1년이 못되어 완성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전라도와 충청도를 잇는 중요한 교통로 중의 하나로서 그 의의가 있다.
일제 강점기 수로정비에 따라 물길이 바뀌어 현재는 제방 나대지에 위치하고 있어 다리의 역활은 끝났지만, 역사의 무게를 오롯이 받아 안았다. 초라하게 늙어버린 다리가, 곤란한 일을 다 떠안아 준 것이다. 곧고 넓은 길만이 항상 최고는 아니다. 좁고 굽은 길이 좋을 때도 있다. 의연하게 남아 있는 미내다리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