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충청도 여행

마곡사

2024년 7월 6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으로 등재돼 있는 마곡사를 찾아봅니다. 서기 640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마곡사가 자리잡은 마곡천 일대는 정감록이나 택리지에도 몸을 보전할 땅 10군데, 즉 십승지지(十勝之地) 중 한 곳으로 선정될 정도의 심산유곡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은 물론 국군도 들어오지 못했다는 말도 내려올 정도이니 은둔의 사찰로서는 제격인 셈입니다.



 

 

자동차로 사찰 인근까지 갈 수 있지만 되도록 입구에 위치한 상가 앞 만남의 광장에서 주차할 것을 추천합니다. 마곡사로 가는 산책로는 놓치기 아까운 힐링 코스입니다.
인근 만남의 광장에서 차를 놓고 상가지역을 벗어나면 이런 모습이 나오고,
이어서 일주문이 나온다. 이 마곡사로 올라가는 코스는 완만한 경사에 좌측에는 울창한 숲이, 우측에는 졸졸거리는 소리가 나는 계곡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이같은 경치와 새소리를 즐기며 갈 수 있다는 점은 도시의 북적임에 지쳤던 심신을 치료해주는 효과를 준다.
마곡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의해 보존되어야 할 세계문화유산(Cultural Heritage)으로 지난2018년 6월 30일에 등재되었다. 한국 불교만이 갖는 불교적 사상과 의식, 승려 및 산사에서의 생활, 산사문화 등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점이 평가되어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이 됐다.
영은암 갈림길이며, 차량은 이곳 주변에 주차를 한다. 상가주차장에서 1.2km이다. 우측길을 따라 내려가면,
다루정(찻집)이 보이며, 다루정밑으로 마곡사 절집이 시작된다.
태화산(423m) 동쪽 자락에 자리 잡은 마곡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기록이 전한다. 우선 '마곡사사적입안'은 신라 고승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다녀온 뒤 643년 선덕여왕의 후원을 받아 세운 7대 가람 중 세 번째 사찰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다른 기록은 서기 643년 신라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했으며, 보철화상 때 설법을 듣기 위해 계곡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형태가 '마(麻)'와 같다고 해 마곡사(麻谷寺)로 이름 붙여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마곡사는 태극 모양으로 휘어 흐르는 마곡천이 남원과 북원으로 나눈다. 대지가 좁은 북원의 중심 건물인 대광보전은 지세 흐름에 맞춰 서남향을 향하고 남원의 중심 건물 영산전은 동남향을 향해 서로 교차한다. 해탈문과 천왕문이 그 사이에서 방향을 적절하게 틀어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다.
작은 소망을 위해 해탈문과 천왕문 사이에 돌탑을 쌓았다.
우선 해탈문 좌측으로 마곡사에서 제일 오래된 건축물인 영산전을 보기로 한다. 좌측의 건물은 홍성루다.
영산전 옆 매화당은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머물던 곳이다. 김시습은 수양대군(세조)이 단종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한 계유정난 이후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른 뒤 이곳에서 은신하고 있었다. 세조가 자신을 만나러 온다는 소식에 김시습이 먼저 떠나고 없자 세조가 '김시습이 나를 버렸으니 가마를 타고 갈 수 없다'며 두고 간 연(가마)도 마곡사에 있다.
영산전 좌측으로 세로방향으로 수선사 건물이다.
영산전은 마곡사에서 조선 중기 목조건축 양식을 대표한다. 영산전은 현재 남아있는 마곡사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1650년에 중수돼 현재 보물 제800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산전 현판은 마곡사에 들른 세조가 써서 남겼다.
영산전은 본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인도의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시던 당시의 광경인 영산회상을 재현해 모신 곳으로, 석가모니 부처님과 10대 제자, 16나한 혹은 500나한을 모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유독 마곡사의 영산전에는 한 가운데에 과거칠 불을, 그 주위에 1000분의 부처님을 모셨습니다. 과거칠불이란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 이 세상에 출현하였다고 하는 일곱 분의 부처님을 일컫습니다.
해탈문을 지나면 속세를 벗어나 부처님의 세계 즉 법계에 들어가게 되며 ‘해탈을 하겠다’는 원력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정면의 중앙 칸을 개방하여 통로로 사용하고 있으며 양편에는 금강역사상과 보현 및 문수동자상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천왕문은 마곡사의 두 번째 문으로, 정면 3칸에 측면 2칸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천왕은 수미산 중턱에 살며 동서남북 네 방위에서 불국토를 지키는 수호신이다. 사찰 정문인 일주문과 주불전인 대웅전을 연결하는 중심축에서, 사천왕상은 주불전으로 진입하기 직전인 천왕문에 배치된다.
일반적으로 갑옷을 입고 보검 등 지물을 들고 있으며, 눈을 부릅뜨고 입을 벌려 악귀 등의 생령으로부터 사찰을 지키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사천왕상은 보물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죽음을 말하니 무섭다구요.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 자연의 이치는 생을 간직한 모든 이에게 평등합니다. 죽음 역시 그렇지요. 당신은 업보와 윤회에 대해 얼마나 확신하고 있습니까. 믿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리 확신하지는 못할 겁니다.
명부전은 죽음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면서 그 동안의 업장을 참회하고 소멸하는 과거와 현재의 모든 업보와 죄를 비는 기도처 입니다.
명부전 뒤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마곡사 산신각이 나온다.
마곡사 산신각은 자장. 범일. 도선 . 보조(지눌) 등 신라~고려 시대 최고의 승려인 국사의 영정을 모신 곳이었다. 원래는 `삼국사당` 현판을 걸었다가 현대에 산신도를 두면서 `산신각`으로 바뀌었다.
내부에는 산신도를 모셨다.
산신각에서 산책로를 따라 성보박물관 방향으로 올라간다.
마곡사 경내 바로 옆에 위치한 마곡천 징검다리 중앙에 여인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원한 물살을 응시하고 있다. 징검다리에 걸터앉은 여인을 보는 것만으로 더위가 가신다.
성보박물관은 10시경이나 관람할 수 있어 발길을 되돌린다.
성보박물관에서 탬블스테이 생활관으로 오르는 길가에 화사하게 핀 수국꽃이 더위를 식혀줍니다.
마곡사는 김구 선생이 머물렀던 백련암과 백범당, 마곡천 옆 삭발 바위와 징검다리, 송림욕장 등을 잇는 백범 명상길을 조성해 놨습니다.
'백범일지'에는 사제 호덕삼이 머리털을 깎는 칼을 가지고 왔다. 냇가로 나가 삭발 진언을 쏭알쏭알 하더니 내 상투가 모래 위로 툭 떨어졌다. 이미 결심은 하였지만 머리털과 같이 눈물이 뚝 떨어졌다'고 기록을 남겼다.
백범 김구선생 삭발터로 승려가 되기 위해 삭발을 하신 곳이다..
극락교를 거너 마곡사 북쪽(북원) 권역은 대광보전과 오층석탑이 있는 교화의 공간이다.
극락교를 건너 우측으로 마곡사 범종각이 자리하며,
북원에는 가장 높은 곳에 대웅보전(보물 제801호)이, 그 아래 앞마당에 대광보전(보물 제802호)과 오층석탑(보물 제799호)이 일렬로 자리 잡았다.
오층석탑 우측으로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라는 뜻으로 스님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심검당이다.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오층석탑이다. 2층 기단 위에 5층 탑신은 일반적인 석탑의 형태지만, 꼭대기 상륜부에 금동보탑이 올려져 있다. 이는 국내에서는 유일하고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 말 티베트 불교(라마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대광보전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785년(정조 9년) 다시 지었다. 안팎으로 구성과 장식이 풍부하고 건축 수법이 독특해 조선 후기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현판은 시문서화 사절로 꼽히는 표암 강세황의 글씨다.
대광보전의 후불탱화는 영산회상도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1788년 조성된 이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6대보살, 10대 제자, 용왕과 용녀, 사천왕으로 구성되어 있지요. 비로자나 부처님 뒷벽에는 18세기 후반 조선회화의 특징을 그대로 살린 백의수월관음도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환희심을 불러일으키는 관음보살님으로 이름나 있습니다.
대광보전에는 앉은뱅이 장애인이 불공을 드리러 왔다가 법당에 사용할 자리를 짠 뒤 걸어나 나왔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대광보전은 마곡사의 중심 법당으로 1788년에 중창되었으며 보물 제80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대광보전 내부에는 비로자나 부처님이 건물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도록 특이하게 봉안되어 있습니다. 비로자나 부처님은 진리 자체를 상징하는 부처님으로, 진리의 몸이 온누리에 두루 비치는 광명의 빛을 내어 모든 이들을 지혜의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마곡사 대웅보전은 보물 제801호로 1785년에서 1788년에 걸쳐 중수되었습니다. 정면 5칸, 측면 4칸, 상층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현판은 신라 명필 김생의 글씨라 한다. 밖에서 보면 2층으로 보이지만 내부는 하나의 공간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양옆에 약사여래부처님과 아미타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때의 부처님들은 공간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를 대표하므로 삼세불이라고도 부릅니다. 2층으로 된 대웅보전은 통층으로 전각의 내부에는 싸리나무 기둥이 네 개가 있는데 여기에도 흥미로운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싸리나무 기둥 안고 돌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로 기둥은 반질반질하게 손때가 묻어 있습니다.
대웅보전 우측으로 산방으로 대향각입니다.
대광보전 우측으로 심검당까지 담장으로 연결된 절집으로 협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 가 보겠습니다.
2층으로 된 창고는 고방으로, 조선시대 문신인 포저 조익 과 그의 셋째아들인 송곡 조복양의 문집 목판인 포저유서 및 송곡문집 판각 등이 보관되어 있다.
마곡사 응진전이며, 우측이 심검당 그 밑으로 범종각이 보인다.
범종각에서 바라본 전경.
대광보전 왼편에는 응진전과 소박하게 자리잡고 있는 백범당이 있습니다.
응진전은 철종 3년(1852)에 새로 보수한 것으로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짜올렸다.
안쪽에는 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우에 부처님의 제자인 16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1896년 치하포(김구가 청년시절 을미사변과 연관된 일본인 장교로 알려진 쓰치다를 살해 한 사건) 사건으로 인천감리서 옥사에 갇혔던 백범은 1898년 3월에 탈옥, 가까스로 도착한 곳이 이곳 마곡사였다. 하은당 스님의 상좌가 된 백범은 원종이라는 법명을 받아 승려로 1년여를 지냈는 데 당시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거처가 백범당이다.
백범이 머물렀던 백범당이다.
김구 선생의 생전 즐겨 쓰던 휘호도 걸려 있다. 휴정 서산대사의 선시로 김구 선생의 친손자인 김양 전 국가보훈처장이 마곡사에 기증했다. 踏雪野中去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湖亂行 어지럽게 함부로 걷지 말라. 今日我行跡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가 遂作後人程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백범당 뒤로 조사전이 있다.
조사전은 절을 세운 이나, 훌륭한 스님들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승려들에게 국사라는 최고의 승려가 되기까지 많은 수행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 세운 것이다. 조사전·조사당·국사전이라고도 한다.
무더위가 가시지 않는 여름 한 낮, 마곡천 시원한 냇가 그늘 옆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은 자연과 문화, 전통 등 그래서 우리 마곡사도 훼손하지 아니하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있는 유산을 지키는 것 입니다. 마곡사에는 계곡물이 흐르고 산책하기에 좋은 솔바람길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며 몸과 마음의 피로를 씻어낼 수 있고, 고찰을 둘러 보면서 역사도 배우고 그러면서 한 가지라도 마음에 담아가는 소중한 곳 이었습니다.

'충청도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여 성흥산 사랑나무  (0) 2024.08.10
서동요 테마파크  (0) 2024.08.10
나바위성당  (19) 2024.08.03
돈암서원  (23) 2024.07.31
장태산자연휴양림  (21) 2024.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