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전북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는 금강을 경계로 건너편은 충남 부여, 오른쪽은 충남 논산으로 나뉘는 도시의 경계지점이다. 이곳에는 `화산`이라는 작은 산이 있다. 산이 너무 아름다워 우암 송시열 선생이 화산이라 이름 붙였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곳에 천주교 대표 성지인 나바위성당(국가지정문화재 사적 318호)이 있다. 나바위성당은 김대건 신부가 1845년 중국에서 한국인 최초로 사제 서품을 받은 뒤, 황산 나루터를 통해 귀국하면서 처음 발을 디딘 곳을 기념해 1907년에 세워진 성당이다.
나바위성당은 한적한 시골마을 제일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23번 국도를 타고 가다 동네 길로 들어서면 입구부터 성당을 알리는 큼직한 표지판이 나온다. 오른쪽 발모양의 화강석 이정표는 성 김대건신부 일행이 첫 발을 디딘 축복의 땅을 표현하는 상징물로 화산마을 도로변에 있다.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성모 마리아상을 지나 오르막을 올라가면,
언덕 위에 파란 하늘과 맞닿아 있는 붉은색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나바위 본당 초대 주임 `요셉 베르모렐(장약실)` 신부 공적비.
성당은 주변 소나무와 어우러져 멋스러운 풍경을 연출한다. 국내 유일의 한옥과 고딕 양식이 조화를 이룬 독특한 건축양식을 보기로 한다.
한국인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서품과 귀국을 기념하여 건축된 나바위 성당이다.
본당의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한식 기와를 얹었고 지붕 아래로 팔각 채광창을 뒀다. 양 측면 개방된 회랑에는 서까래가 그대로 노출돼 있어 한국 전통 목조건축과 서양식 성당건축이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 특징이다.
본당 안으로 들어 가 보기로 한다.
성당 내부는 또 다른 모습이다. 가장 큰 특징은 성당 내부를 좌우로 가르는 나무기둥이다. 남녀 신자들의 좌석을 구분하기 위한 칸막이 역할을 했다고 한다. 특히 창문에는 일반 성당에서 흔히 보던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닌 한지가 붙어 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 신자들이 직접 한지에 그림을 그려 붙이던 전통이 10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단다.
본당 좌측으로 사제관을 역사관으로 꾸몄다.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는 1821년 충남 당진 우강면 송산리 솔뫼마을에서 출생하고 1846년 9월 16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새남터에서 25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최초 사제 업무는 전북 익산 나바위 성당에서 이루어졌다. 김대건 신부는 조선시대 명문 집안의 후손으로, 9대조 김의직 충청병마절도사에 이어 8대조 김수원 통훈대부 후기에 내포 솔뫼로 이전했다. 조부 김택현이 천주교 신자로 입신하면서 김대건 집안은 천주교 가문이 되었다. 김대건의 아명은 재복이었고, 나중에 신앙을 크게 세운다는 뜻으로 대건이 되었다.
김대건은 1837년 6월 7일 마카오에 임시 설립된 조선신학교에서 신학생 과정을 시작해 1839년 필리핀 마닐라 인근 롤롬보이, 다시 마카오, 요동 인근 백가점, 상하이 등에서 신학교육을 받는다. 1845년 8월 17일 상하이 김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의 집전으로 조선인 최초 사제 서품을 받았다. 10월 12일 금강 하구 강경포구 인근에 위치한 전북 익산시 망상면 나바위 성당에 안착하여 한국인 최초로 신부로 사제역을 맡았다. 나바위 성당은 일찍이 중국을 통한 프랑스 신부들의 충남과 전북 등 호서지역 선교를 위한 초입이었다.
나바위 성당의 주변 모습.
성수를 담았던 돌 수반, 나무 수반, 닻 모양의 십자가.
나바위 본당 입구 우측으로 `치유의 경당`으로 비신자는 들어갈 수 없다.
성당 우측으로 난 산책로 입니다. 본당의 불은색 벽돌과 소나무가 운치있게 다가옵니다. 산책로를 따라 성모동산으로 가봅니다.
성당 뒤편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화산으로 오르면 김대건 신부의 성상이 있다. 그 옆으로는 성모 마리아상을 중심으로 넓은 잔디밭이 깔려 있는데 야외공간인 성모동산이다. 도포를 걸치고 한쪽 손을 든 성인의 모습이 바티칸에서 공개된 성상과 비슷한 갓을 쓴 김대건 신부의 성상이다.
바로 뒤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정자 '망금정'이 있다. 그 옆으로 25세 나이로 순교한 김 신부의 순교비가 세워져 있다.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들어올 때 타고 온 선박 라파엘호의 크기에 맞춰 제작됐는데 신자들이 인근에서 직접 돌을 깎은 뒤 이곳까지 옮겨와 한 단 한 단 쌓았다고 한다.
순교 기념비 뒤쪽으로 금강 황산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망금정이라는 이름은 ‘아름다움을 바란다’는 뜻이다. 1915년 베로모렐 신부가 초대 대구교구장인 드망즈 주교의 피정을 돕기 위해 지은 정자다.
예전에는 망금정 아래까지 금강 강물이 넘실거렸으나 1925년 일본인들이 이 일대를 간척하면서 금강 줄기가 바뀌어 지금은 평야로 변했다.
망금정 주변 바위 벽에는 마애삼존불이 그려져 있다. 밑으로 내려 가 자세히 보기로 한다.
망금정이 있는 너럭바위 아래 바위 벽면에는 마애삼존불이 그려져 있으나 마모 가 심해 자세히 볼 수 가 없다. 천주교와 불교가 한곳에서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 색다르면서도 묘한 동질감을 준다.
나바위 본당 제 2대 주임신부인 소세 신부 묘. 소세 신부는 나바위성당을 바라보며 눕고 싶다는 유언에따라 이곳에 안장되었다.
김대건 신부는 약 1년간 조선교구 부교구장으로 전교하다 관헌에게 붙잡혀 1846년 9월 16일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그의 열성적 전교 활동과 경건하고 당당한 신앙자세는 이후 천주교인들의 귀감이 되었다. 유네스코는 김대건 신부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2021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