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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여행

문경새재

2024년 7월 26일

우리나라 옛길의 대표라 불릴만한 길. 옛적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넘나들던 그런길. 바로 문경새재 옛길이다. 특히 문경새재는 다른 옛길과 달리 길이 살아 있다것이 더 매력적이다. 험준한 백두대간 사이로 뻗은 흙길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려 활기가 넘쳐난다.

 

 

 

문경새재도립공원 제2주차장에서 시작해 고갯마루의 조령관에서 다시 이곳 주차장까지 돌아오는 것으로 약 15km의 거리다. 한낮의 무더위를 피해 새벽에 길을 나서지만 처음부터 땀이나기 시작한다.
문경새재의 새재는 조령을 우리말로 읽은 것으로, ‘나는 새도 넘기 힘든 고개’라는 의미다. 또 다른 유래는 문경읍의 하늘재와 괴산군 연풍면의 이화령 사이에 만들어진 고개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문경새재는 부산 동래에서 한양으로 가는 최단 거리여서 교통과 국방의 요충지로 여겨졌다.
오랫만에 왔더니 초곡천 건너 미로공원을 만들어 놓았네요.
지금이야 새재길을 넓히고 황토길로 만들어 편하게 길을 조성하였지만 옛길은 다듬어진 길은 아니었다. 그래도 오래된 길이 내뿜는 그윽한 향기로 가득하다.
영남지방에서 한양으로 가기 위해서 넘을 수 있는 고개는 죽령고개와 추풍령고개가 있다. 하지만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는 사람들은 죽령고개를 넘으면 시험을 죽을 쑬까 봐, 추풍령고개로 가면 추풍낙엽처럼 낙방할까 봐 걱정돼서 주로 문경새재를 이용해서 한양에 갔다고 한다.
넓다란 평지에 돌로 쌓은 성문인 제1관문 주흘관의 웅장한 모습이 펼쳐진다. 주흘관 양 옆으로 암봉이 두드러진 조령산(1025m), 문경의 진산인 주흘산(1075m)과 어울려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을 물씬 풍긴다. 주흘관 주변에는 하천이 흐르고 그 곁에 수천 명의 병사가 머물러도 좁지 않을 거 같은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잔디밭 끝에 성벽이 길게 자리한 모습도 멋있었지만, 성벽 곁을 둘러싼 험준한 산세가 천혜의 요새나 다름없다.
주흘관을 지나면 왼쪽으로 드라마 ‘태조 왕건’을 촬영했던 KBS 세트장이 나온다. KBS가 문경새재 오픈세트장에 세트장을 지은 건 조령산과 주흘산의 산세가 고려의 수도인 개성의 송악산과 비슷해서였다고 한다.
세트장을 뒤로하고 올라가다 보면 우측으로 거대한 암벽지역이 폭포동이라는데, 이 암벽에 현감 구명규의 선정비와, 상주목사 이익저의 불망비를 바위 벽면에 각자하여 놓았다.
암벽지역에서 조금 올라가니 쉼터가 나온다. 그 옆에 인위적으로 돌로 조성한 산을 `조산`이라고 하는데,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공허하거나 취약한 지점에 조산을 만듦으로써 그곳을 보강하고자 하는 의식이 담겨있다. 문경지역에서는 골맥이 서낭당으로 불리며 마을 입구나 경계지점에 세워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한 곳이다.
조산에서 조금 가다보면 사각진 바위가 튀어나온 것을 볼 수 있다.
`지름틀 바위` 기름을 짜는 도구인 '지름틀'과 유사하게 생겼다하여 '지름틀바우'라는 이름이 붙여진 바위. '지름틀'은 경상도 사투리다.
다시 호젓한 길을 따르면 조령원터와 교구정이 차례로 나온다.
성처름 돌로 쌓은 조령원은 옛 관리들을 위한 숙박시설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청운의 꿈을 품고 한양길로 선비들, 상인들 등 여러 계층의 선조들이 험준한 새재길을 오르다 피로에 지친몸을 한 잔의 술로써 여독을 풀면서 쉬어 가던 주막이다.
경상도 감찰사 이취임식이 열리던 교구정 앞에 보면 볼수록 특이한 형태의 구부러진 소나무가 일품이다.
교구정 앞에서는 잠시 계곡 구경을 하는 것이 좋다.
계곡에는 용추폭포가 있는데, 팔왕폭포라고도 부르는 이 폭포는 암반이 발달해 계곡미가 수려하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용추폭포 주변 암벽에 `용추`라고 각자를 하여 놓았는데, 글씨를 새긴 사람은 구지정으로 1666년(현종7년) 공주와 황주목사를 지냈다.
용추폭포는 사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눈에 드라마의 장면이 떠오를 거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었어, 인생이 찰나와 같은 줄 알면서도 왜 그리 욕심을 부렸을꼬. 이렇게 덧없이 가는 것을….`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궁예가 자기 부하들에게 최후를 맞이하며 했던 대사다.

 

용추폭포에서 조금 더 올라가다 보면 꾸구리(잉어과에 속한 민물고기)바위가 나오는데, 전설에 의하면 바위 밑에는 송아지를 잡아먹을 정도의 큰 꾸구리가 살고있어 바위에 앉아 있으면 물속의 꾸구리가 움직여 바위가 움직였다고 한다. 특히 아가씨나 젊은 새댁이 지나가면 희롱하였다고 한다.
넓게 잘 닦여진 문경새재 옛길 옆으로 티 없이 맑은 계곡에 흐르는 물소기가 청아하다. 발길마다 무릉도원이다.
돌탑이 여러개인 이곳은 소원성취탑지역으로 그 옛날 문경새재를 지나는 길손들이 이길을 지나면서 한 개의 돌이라도 쌓고 간 선비는 장원급제 하고 몸이 마른 사람은 쾌차하고, 상인은 장사가 잘되며, 아들을 못낳은 여인은 옥동자를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용추폭포에서 500m쯤 가면 훈민정음으로 쓴 ‘산불됴심’ 표석이 눈에 들어온다. 건립연대 미상의 희귀한 산림보호비다. 자연을 소중한 자원으로 인식하고 보호하려는 인식은 옛날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응암(매바우)폭포가 나타난다. 인공폭포지만 바라보기만 해도 시원하기 그지없다.
폭포를 지나면 두번째 관문인 조곡관을 만나게 된다. 임진왜란이 끝난후 이지역의 군사적 중요성에 따라 1594년 신충원이 파수관으로 임명되어 응암 근처에 일자성을 축조했는데 이 성이 지금의 조곡관이다. 조곡관은 세 개의 관문 중 가장 먼저 설치되었지만 명칭 상으로는 제2관문이 된다.
성문 안으로 들어서면 미끈한 금강소나무들이 반기고 드문드문 물박달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산자락에 둘러싸여 천연 요새라 불리는 조곡관은 장송과 기암절벽, 맑은 계곡이 어우러져 더위를 식히며 쉬어가기 좋다.
조곡관 인근 계곡 사이로 흐르는 조곡 약수에서 갈증을 해소하러 약수터로 가본다.
조곡약수터로 어느 여성분이 이물을 떠서 몸을 씻고 있었다. 물맛 떨어지는 행동에...
문경새재 아리랑비
아리랑비에서 조금오르니 바위굴이 나온다.
갑작스런 소나기로 이 바위굴에 들어와 우연히 만나게 된 두 남녀가 깊은 인연을 맺졌다는 사랑이 전해지는 바위다.
`귀틀집` 지방에 따라 방틀집·목채집·틀목집·투막집 등으로 불린다. 주로 산간지역의 화전경작지 취락에 분포한다.
임진왜란 당시 신립 장군이 농민 모병군 8,000명을 이끌고 제1진을 제1관문에 배치한 데 이어 제2진의 본부를 설치했던 장소다. 신립의 군대는 허수아비를 세워 초병으로 위장한 후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맞섰지만 중과부적으로 순절했다. 왜군이 초병의 머리에 까마귀가 앉은 모습을 보고 위장임을 알아채고 안심하고 고개를 넘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는 `이진터`다
길을 따라 제3관문으로 가다보면 갈림길이 하나 나오는데 장원급제길이다. 장원급제길은 말 그대로 영남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옛길이다.
‘문경초점’ 표석이 보인다.
초점은 문경새재의 옛 지명으로 낙동강의 3대 발원지다. 세종실록지리지는 ‘낙동강은 그 근원이 셋인데 하나는 봉화현 북쪽 태백산 황지에서 나오고, 하나는 문경현 북쪽 초점에서 나오며, 하나는 순흥 소백산에서 나와서 물이 합하여 상주에 이르러 낙동강이 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돌을 책처럼 쌓아놓은 책바위는 웅장하다. 선비들이 하나 둘 찾아와 장원급제의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책바위를 지나 걷다보면 조령관이 서 있는 새재 고갯마루에 도착한다. 이곳은 제법 널찍한 공터로 조령산과 주흘산 일대를 조망하기 좋다.
제3관문 조령관을 통과하면 충북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다. 급제를 꿈꿨던 선비처럼 영남에서 충청도로 고개를 넘었다. 조령관은 오랑캐를 막기 위해 세워져서 그런지 주흘관과 달리 북쪽을 향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조령관 좌측으로 조령약수와 신당이 있으며, 조령약수는 조선 숙종 34년(1708) 조령성 구축시 새재정상(650m)에서 발견된 이 샘은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 길을 넘나들 때 갈증을 해소 시켜주는 역사 속의 명약수로서 사철 솟아올라 옛날부터 이 물을 즐겨 마시면 장수하는 백수령천이라고 한다.
조령약수터에서 바라보는 조령관 전경입니다. 이제부터 다시 문경새재도립공원 제2주차장으로 돌아 갑니다.
´옛길박물관´에는 괴나리봇짐과 봇짐 속의 좁쌀 책, 호패, 휴대용 고지도 등과 과거 길에 올랐던 선비의 과거시험지, 합격교지, 금의환향 길과 낙방 길 유물 등이 망라되어 있다.
옛길박물관 부근에 신길원현감 충렬비가 있다. 문경현감으로 재직 중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일본군 제1군이 1592년 4월 27일 상주를 거쳐 문경으로 공격해오자, 그는 관군 수십 명을 거느리고 항거하다가 부상을 입고 포로가 되었다. 일본군 장수가 그에게 항복을 권유했으나 신길원은 굴복하지 않고 꾸짖으며 항거하다가 사지를 절단당하여 순절했다.
선비의 상
날개 달린 새도 넘기 어렵다던 험준한 고갯길 조령을 넘었고, 온몸이 땀에 젖은 모습이 낙방의 쓰라림을 안고 다시 조령을 넘어 고향으로 내려가는 나의 모습이였다. 선현들의 자취가 서린 문경새재 옛길에서 역사를 되돌아 보는 한나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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