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6일
장수는 임진왜란 때 경남 진주 촉석루에서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논개의 고향이기도 하다. 논개가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주촌에는 생가와 동상이 조성돼 있고, 장수읍에는 논개의 영정을 모신 사당(의암사)이 자리하고 있다. 논개 사당인 의암사 바로 아래가 의암호인데, 논개 사당에 오르면 멋진 의암호와 팔공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의암호 주변 의암공원 일대에서는 제7회 '장수한우랑사과랑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주논개의 고향에서 사과와 한우라는 '레드 푸드'를 즐긴다는 콘셉트로, 세 가지 테마가 모두 붉은색이라는 점에 착안했단다. 한우와 사과는 장수군이 집중 육성하는 특산품. 장수의 대표적인 사과 품종인 홍로는 9월 초부터 출하가 시작된다. 축제가 시작될 쯤이면 붉은 사과를 필두로 장수는 가을색으로 물들기 시작할 때다.
장수농업홍보전시관
장수사과의 대표 품종은 '홍로'로 출하시기가 가장 빠르다. 이는 추석 차례상에 놓인다 하여 '추석사과'로 불린다.
시원한 풍경을 자랑하는 의암호.
의암호 건너편에 논개 영정을 모신 '논개 사당'이 있다. 일명 '의암사'라고도 불린다. 논개사당의 공식 명칭은 그가 왜장을 끌어안고 몸을 던진 바위에서 이름을 딴 의암사(義巖祠)다.
의암사 외삼문 숭앙문.
입구에서 사당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올라 외삼문인 숭앙문에 들어서니 전면에 휘광문이 눈에 들어온다.
기념관에는 약간의 논개의 유품과 남편 최경회 장군의 유품이 진열돼 있다. 참고로 논개의 남편 최경회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싸움에 나섰다가 왜장 게야무라 로구스케에 패해 성이 함락되자 자결했다. 논개는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의도적으로 진주 관기로 등록했다고 한다.
논개생향비( 介生鄕碑), 1846년 당시 장수현감 정주석이 논개가 장수 태생임을 기리기 위해 비문을 짓고, 그의 아들이 글을 쓴 비석이다. 1846년 헌종 때 현감 정주석은 논개생향비를 건립했는데, 이후 일제에 의해 파괴될 위기에 처하자 마을 사람들이 이것을 땅속에 파묻어 보존했다.
'矗石義妓論介生長鄕竪名碑'(촉석의기논개생장향수명비). 비각안에 있는 비가 바로 그때 숨겨 놓았던 것으로 자세히 보면 찍힌 자국이 보인다.
사당으로 들어가는 내삼문인 휘광문.
그 안 충의문을 지나면 지방기념물 제46호로 지정된 의암사가 우뚝 서 있다.
사당 처마엔 함태영 부통령의 친필 현판이 걸려있고, 영정각 안에는 고고한 자태의 논개 영정이 있다.
논개사당에 모셔진 논개 영정 영정 앞에 서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유교사회에서 기녀라는 신분을 갖고 있던 논개는 보수적인 지배계급에 의해 편견의 대상일 뿐이었다. 장수는 그런 그녀를 더 애닯게 여기는 것 같다. 비록 죽어서라지만 그녀를 기리기 위한 아름다운 사당은 그나마 위로가 된다. 신분도 계급도 따지지 않고 이제는 누구나 그 사당에 올라 그녀를 추모할 수 있다. 마치 논개의 성처럼 붉은색의 사당이 의암호 주변에 우거진 나무의 초록빛과 대조돼 더욱 빛을 낸다.
사당에서 바라보면 바로 아래 산책로를 정비한 의암호 뒤로 분지가 넓게 펼쳐지고, 그 끝자락에 해발 1,151m 팔공산이 아늑하게 감싸고 있다. 이순신 같은 당대의 장수가 있었고, 또 논개처럼 올곧은 여인이 있었고, 꿋꿋한 수많은 민초들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그 험한 시기 잘 넘길 수 있었다. 바람 앞 촛불처럼, 흔들리는 나라의 운명을 외면하지 않았던 이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의 실마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