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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여행

진안 수선루

2024년 11월 9일

진안 서남쪽 섬진강과 세동천이 만나 크게 만곡을 이루는 강변 옆에 섬진강의 상류 진안군 마령면에 있는 `수선루`는 1686년 숙종 임금 때 연안 송 씨 4형제 네 분이 부모님께서 친구분들과 바둑도 두시고 신선처럼 노닐 수 있도록 지어놓은 2층 누각 목조 건물이다. 

 

 

 

수선루 정자 앞에는 섬진강 상류천이 굽이돌아 좋은 경치를 이루며, 정자는 산자락 바위굴 속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다.
수선루로 오르는 오솔길 우측으로 구산서원으로 가본다.
구산서원은 1828년(순조 28)에 송보산을 배향하기 위해 창건되었다가 16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1967년에 이르러 중건되었고 1967년에 진안유림의 발의로 김문기(세종시대 이조판서)와 송림이 추향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산서원 우측으로 퇴휴재 송보산을 손현배향을 하던 구산사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송보산은 김종직의 문인이며, 세종직에 등과 하여 단종조에 예조판서를 지내다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후학 양성에 힘썼다.
구산사는 전면 3칸 측면 2칸의 기와 맞배지붕이며, 백촌 김문기는 1426년(세종8)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판서를 지냈고, 1456년 단종 복위에 가담하여 이개 등과 함께 살해된 인물이며, 월계 송림은 효행으로 그 명성이 높았다.
수선루는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암굴에 만들어진 정자다. 타포니를 활용해 바위 동굴 안에다 끼워 넣듯 지었다.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들을 위해 정자를 세웠지만 정작 정자를 누렸던 건 아버지가 아니라 4형제였다. 형제들은 팔순이 다 되도록 우애를 돈독히 하며 정자를 드나들면서 풍류를 즐겼단다.
정자가 있는 이곳은 마이산 주변으로 국가지질공원인데 타포니가 떨어져 나온 자국이 굉장히 커진 그곳에 건물을 짜 맞춰서 넣었다. 이런 건축 양식이 특별해서 보물로 지정되었다. 수선루 정자의 이름은 ‘잠잘 수’(睡)에 ‘신선 선’(仙) 자를 쓴다. 신선이 잠을 잘 만한 곳이란 뜻일 터다.
특히 수선루는 진입 과정에서 경험하는 어두움과 밝음의 극적으로 대비한 건축 형식을 갖고 있다. 밝음을 강조했던 당시 건축방식을 벗어난 파격적인 건축물로 꼽힌다.
태극문양이 있는 문 안으로 들어가면 배수로가 보인다.
바위에 옛 선비들이 새긴 글(송씨수선루) 밑 바위틈에서 샘물이 나오고 있다.
수선루는 보물이지만, 문을 활짝 열어뒀다. 누구든 수선루 마루에 올라앉아 섬진강 물길을 내다볼 수 있다. 보물을 마치 제 것처럼 누리는 경험이다.
상부는 휜 창방(기둥머리를 좌우로 연결하는 부재)의 사용했고, 방 내부는 연등천장(별도로 천장을 만들지 않고 서까래를 그대로 노출시켜 만든 천장)으로 꾸며졌다.
수선루 곳곳에는 민화풍의 그림이 잔뜩 그려져 있다. 대들보 왼쪽 위 벽면에 바둑을 두고 있는 선비 4명이 그려져 있는데 모두 흰 수염이 덥수룩하다. 기이한 바위 동굴에다 더 기이하게 지은 수선루에 흰 수염의 노인 넷이 드나들었으니, 신선을 떠올리는 건 당연했으리라.
수선루의 평면형태는 상·하층 모두 정면 2칸, 측면 1칸으로 규모도 비슷하지만 상하로 연속되는 부분은 중앙의 1칸뿐이며, 하층의 우측 출입 칸 상부공간을 상층의 마루 칸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외부공간을 내부공간화 시킨 것은 특출한 공간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지형을 이용해 암굴에 건축했고, 지붕의 전면은 기와로 하고 후면은 돌너와로 마감한 당시 건축적 특성을 엿볼 수 있다. 지붕으로 위에 있는 돌을 보며는 1억 년 전에 만들어진 돌들이다.
바위벽 그곳에서 역암(자갈로 이루어진 퇴적암) 덩어리 하나가 빠져나오고 또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그 옆의 것이 빠져 나오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동굴이 생겼으며 그 동굴에 2층 누정을 지을 발상을 한게 굉장히 특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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