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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여행

의암 주논개 생가지

2024년 9월 6일

전북 장수는 임진왜란 당시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왜장을 껴안고 진주 남강에 투신해 순국한 의암 주논개가 태어난 곳이다. 논개는 진주 기생으로 잘못 알려져 왔지만, 사실은 기생으로 위장해서 순절한 열녀다. 아버지인 서당훈장 주달문씨와 어머니 밀양박씨 사이에서 외동딸로 태어났으며,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계면 의암로 558에 '논개 생가지'가 있다.

 

 

 

 

'논개 생가지'는 총 2만여 평의 부지에 의랑루, 단아정, 논개 동상, 논개 부모묘, 시비, 초가집생가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논개의 실제 생가는 그 아래쪽 대곡저수지 근방이다
유관순과 함께 한민족사의 2대 충절 여인으로 꼽히는 논개는 19세 때인 1593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듬해 2차 진주성 전투 시 진주성이 함락되고 남편 최경회 장군이 순국하자 일본 장수들이 촉석루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유인해 껴안고 남강에 투신해 순국했다. 당시 시신을 진주에서 장수로 옮기던 중 함양 서상에 이르러 시신이 부패해 더는 갈 수 없고, 도적이 출몰하는 육십령 고개를 넘기가 어려워 서상면에 안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해진다. 1970년 2월 경남의 향토 유적관리 지시에 따라 ‘전설의 논개 묘’라는 작은 간판을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방지마을 입구에 세우고 언론에 보도되면서 논개 묘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논개 생가지 입구 의랑루.
의랑루 2층누각에서 바라본 공원안쪽 전경으로 상당히 넓은 대지를 활용하여 공원을 조성하였다.
의암신안주씨논개지려(義巖新安朱氏論介之閭) 비각.
논개에게 바치는 헌시비 (獻詩碑)  `한 꽃송이'
의암신안주씨논개지려 비각과 헌시비 표지석을 지나서, 우측으로 연못과 단아정이 보인다.
단아정은 주논개가 어릴 적 노닐던 곳에 세웠으며 나라를 염려하는 마음과 달 속의 선녀 항아보다 아름다운 주논개의 얼을 되살린다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원래 단아정의 현판은 전두환이 1999년 10월에 丹娥亭’(단아정)으로 글자를 썼지만 그후 지역 시민단체와 일부 군민은 이 현판에 대해 `군부 독재자가 쓴 치욕적인 글과 표지석`이라며 서명 운동을 펼치는 등 철거를 촉구해 ‘단아정’ 현판이 기존 현판과 동일한 규격에 한글 및 양각으로 새롭게 제작, 게시됐다고 한다
기념비
의암 주논개 생가지의 중심에는 의암 주논개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새로운 표준영정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며 동상 주변으로 ​논개와 관련한 주요 사건을 묘사한 부조가 세워져 있어 논개의 일생을 짐작할 수 있다.
쌍가락지 모양의 조각상 만해 한용운이 지은 ‘논개의 애인이 되어서 그의 묘에’란 시가 적혀 있다. 우측으로 생가 복원 내역을 기록한 주논개생가사적비
논개는 주씨 집성촌인 주촌마을에서 태어나 13살까지 성장했다. 논개의 생애와 업적을 짚어주는 논개기념관이다.
주논개는 1574년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에서 태어나 1593년 6월 남편 최경회 현감이 진주성 전투 참전 중 사망하자 남편과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왜군 승전연에 참석, 왜장을 껴안고 진주 남강으로 뛰어들어 순국했다. 논개의 호는 의암, 성은 주씨, 본관은 신안이다. 장계면 주촌마을에서 서당 훈장인 아버지 주달문과 어머니 밀양 박씨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논개가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갈 곳이 없어지자 당시 장수 현감이던 최경회의 배려로 장수 관아에서 잔심부름을 하면서 살 수 있게 됐다. 최경회는 부인 김씨 사망 후 논개와 부부의 예를 올렸다. 임진왜란 때 최경회는 의병장이 돼 큰 전과를 올렸다. 진주성 전투의 승리 때 큰 공을 세워 1593년 4월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영전돼 진주성에 입성했다. 논개도 남편의 뒤를 따라 갔으나 진주성은 왜군에 함락되고 남편은 순국했다. 논개는 기생으로 위장해 촉석루에서 열린 일본군의 승전잔치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투신·순국했다.
"의암주논개낭 생장지 사적 불망비" 비각
"충의공 일휴당 최경희 현감 선덕추모비" 비각
지금의 논개생가지는 내곡 저수지 건설로 인해 수몰된 원래의 논개생가지를 복원해 놓은 곳이다. 돌담을 두르고 넓은 마당이 있으며 문안으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네칸 초가가 그리고 우측으로는 세칸 광채가 자리하고 있다. 생가는 건물 2동으로 이루어진 ‘一’자형 초가로써 돌담으로 둘러져 있다.
논개가 태어난 곳은 장수, 순국한 곳은 진주, 죽어 묻힌 곳은 아버지의 고향인 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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