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은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어 조선 시대에는 사대부들이 들렸다 가는 곳이었다. 겸재 정선이 스승인 김창흡을 찾아 문안드린 후 그린 그림으로 `삼부연도`다.
삼부연폭포는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의 군청에서 그리 멀지 않다. 읍내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나가면 바로 폭포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만난다. 보통 산 중턱에 있는 폭포와 달리 길가에 있었 편하게 만나는 폭포다.예전에 폭포 좌측으로 차량이 간신히 다닐 수 있었던 오룡굴만 있었는데, 2016년에 새롭게 용화터널이 개통된걸 보니 10여년의 세월이 흘러간 것을 느낄수 있다.오룡굴은 과거 1970년대 초, 철원에서 주둔하던 포병군부대가 당시 삼부연폭포 옆 산위로 힘들게 걸어다니는 용화동마을 주민들의 편의와 용화동 사격장으로 통행하기 위해 폭파방식으로 뚫은 길이 80여m정도, 폭4m정도로 겨우 버스가 지나가는 인공터널이였다.
폭포주변의 모습이며, 산중턱에는 조그마한 부연사가 있다.높이 20미터의 삼부연폭포가 눈에 들어 온다.삼부연폭포를 가까이 볼 수 있도록 전망대도 만들어 놓았다.2024년 안전펜스를 넘어 안으로 들어가 물놀이하다 심정지로 사망한 후 하천으로는 출입이 금지되고 있다.3단으로 흘러내리는 웅장한 폭포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물줄기와 시원한 폭포 소리를 가까이에서 감상하며 잠시나마 무더위를 식힐 수 있었다.‘철원읍지’에 의하면 삼부연은 용화산에 있으며, 시냇물이 뒤섞여 갈수록 깊고 넓어지다가 절벽에 거꾸로 걸리면서 3층의 물구덩이를 만들었다. 그 깊이를 알 수 없지만, 세 개의 가마솥 모양이니 삼부연이라 했단다.실제로 삼부연은 물이 층암으로 된 바위벽을 세 번 걸쳐 내려온다. 물이 고이는 못이 마치 가마솥을 닮았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에는 도를 닦던 네 마리의 이무기가 있었는데 세 마리가 폭포의 기암을 각각 하나씩 뚫고 용으로 승천했다고 한다. 그때 생긴 세 곳의 구멍에 물이 고인 것이 삼부연. 상단의 못을 노귀탕, 중간 못을 솥탕, 하단의 가장 큰 못을 가마탕이라 부르고 있다.조선 후기의 화가 겸재 정선도 금강산을 그리러 가다 삼부연 폭포를 화폭에 담았다. 정선은 삼부연의 특징을 그대로 시각화했다. 첫 웅덩이를 거쳐 두 번째 웅덩이에서 멈칫하고 마지막 세 번째에서 시원스레 떨어지는 폭포를 연출했다. 폭포 아래 언덕에 서 있는 사람들은 세 웅덩이를 전부 볼 수 없다. 그러나 정선은 ‘삼부’, 즉 세 개의 가마솥을 전부 담고 싶었다. 화가 겸재 의도에 따라 가감하고 편집하는 진경산수화의 특징인 셈이다.
겸재 정선이 그린 삼부연도는 지금의 폭포와 당시 그림과 차이가 있다. 폭포의 바위가 떨어져 왼쪽으로 흐르던 물줄기가 오른쪽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삼백 년이라는 세월에 변치 않고 버티기가 어려웠던가. 20미터 높이의 3단 폭포는 수량이 많고 소리도 우렁차다.
하천으로 내려가 폭포를 가까이 올려다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수묵화를 제 몸으로 그려내고 있는 빼어난 폭포, 금강산을 그리러 가던 겸재 정선도 푹 빠졌던 절경을 오늘 또 다시 감상하고 간다. 오룡굴 반대쪽으로 가보기로 한다.방문한 날에는 오룡굴은 공사를 하고 있었다. 굴 밖으로 나서면 개울가를 따라 2㎞ 상류에 용화저수지가 있다.용화터널 반대 방향 삼부연폭포주차장의 모습이다.주차장에는 공사차량들로 분주하다.삼부연폭포 상류 용화천의 모습.삼부연폭포와 오룡굴을 야간 경관 및 미디어아트를 이용하여 새롭게 조성하는 공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