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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행

원불교 성지

2025년 10월 25일

4대 종교 유적지가 있는 전남 영광에서 흔히 여행에 익숙한 절집과 성당, 교회 말고, 다소 낯선 원불교의 성지를 둘러보기로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4대 종교 불교,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가 있습니다. 그 중 생소한 원불교 영상성지 주차장에 왔습니다. 주차장 서쪽에 옥녀봉을 바라봅니다. 자세히 보면 옥녀봉 바위에 둥그런 원을 표시해 놓았네요.
영광의 원불교 영산성지는 교조 소태산 박중빈이 나고 자란 곳이자 깨달음을 얻은 곳이다. 그가 태어난 생가와 오르내리며 기도했던 산, 깨달음을 얻었던 곳을 비롯해 제자들과 함께 원불교의 토대를 닦았던 구수산 아래 길용리 일대의 분지가 모두 성지가 됐다.
영산신학대학교 표지석
고요한 구수산 자락 아래 자리한 영산근원성지는 1916년 4월 28일,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정신 아래 새로운 길을 연 이래 이곳은 원불교 교단의 뿌리로 현재까지 제1근원성지로 자리매김해 왔다.
원불교를 ‘불교의 종파 중 하나’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다. 원불교는 1916년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의 깨달음으로 시작된, 불교와는 다른 종교다.
깨달음을 얻을 당시 박중빈의 나이는 스물여섯. 출가한 적도 없고, 스님도 아니었다. 절대자의 위엄과 그에 대한 경배를 강조하는 전통적 종교에서 벗어나, 실리적이고 개혁적인 종교를 표방하는 게 원불교라는 얘기다. 원불교는 불교와는 서로 다른 종교라는 것이다. 외부인들이 느끼는 가장 큰 차이는 불상이 없다는 것. 불상 대신, 부처님의 마음을 상징하는 동그라미 형상의 ‘일원상’을 모신다. 동그라미는 부처님의 깨달아 충만한 마음과 우주 만유의 본원을 뜻한다.
이곳에는 원불교 영산성지 법인성사를 이룬 영산원, 대각전, 법모실, 적공실, 학원실 등 초기교단 건물이 있다.
'대각전'은 깨달음의 상징이자 신앙 수행의 본산으로, 소태산이 1936년 직접 감역해 완공한 건물이다. 강당형 구조에 기둥 없이 탁 트인 내부, 절제된 일본식 목조양식과 위로 함석지붕을 얹어낸 형태는 단순하지만 고요하고 단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481호로 지정되어 있다.
적공실은 원기 10년 경 선잔의 집을 옮겨 지은 건물로 원불교 교조 영빈관으로 사용된 후, 여직원실로 사용돼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영산 고아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법모실은 원불교 제3대 종법사인 대산 김대거 종사가 기거 했으며, 원장의 숙소로 사용하다가 대안학교인 영산성지고등학교의 기숙사로도 사용됐다.
신성실은 원불교 교조 첫 여성제자 사티원 이원화 선진이 살았던 집으로, 영상지부 안살림을 하였던 곳이다.
영산원은 원불교의 최초 교당이다. 1923년 옥녀봉 아래에 있던 구간도실을 지금의 위치로 옮기며 박중빈과 제자 9명이 함께 직접 건물을 세웠다. 이들은 방언공사를 통해 교당을 완공했고 이곳이 원불교 교화의 시작점이 되었다.
옥녀봉 아래에 있을 당시에는 '구간도실'로 불렸으나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면서 3천 년 전 석가모니불의 영산회상을 재현한다는 의미로 '영산원(靈山院)'이라고 했다.
학원실은 대각전을 건축하기 전까지 영산교당 법당으로 사용하였으며, 영산선학대학교의 전신인 영산선원 개원 이후 교실과 기숙사로 사용하였다.
영모전은 박종빈 이하 역대 선령 열위 법은을 추모하며 향례를 올리는 곳으로 1980년 지어졌다. 4단의 제단이 조성돼 있으며 역대 선령들의 합동 위패가 모셔져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6월 1일, 12월 1일 합동 향례가 치러진다.
종교는 보통 믿음의 징표로 신묘한 사건을 끌어들이고, 기도의 효능을 강조하며 기적을 주장한다. 원불교에서 말하는 ‘백지혈인(白指血印)’의 기적이다. 기적의 내용인즉 이렇다. 박중빈이 구수산 일대 아홉 봉우리에서 기도를 올리던 제자를 불러모아 묻는다. `그대들이 죽어야만 정법회상(진리의 바른 법)이 세상에 드러나 구원을 받게 된다면 조금도 여한 없이 죽을 수 있겠느냐.` 제자라고는 하지만 다들 동네 선후배 사이. 주저했을 법도 하건만 모두 목숨을 버리기에 동의했다. 자결하기로 정한 날이 다가오자 박중빈은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뜻의 ‘사무여한(死無餘恨)’이라 쓴 백지에 제자의 손도장을 받았다. 인주 없이 맨손으로 찍은 도장이 기도 도중 핏빛으로 변했다. 이게 바로 백지혈인의 기적이다. 이런 기적이 일어난 자리가 ‘구간도실’ 터다. 생가에서 가깝다. 구간도실은 ‘도를 공부하는 아홉 칸의 집’이라는 뜻. 건물은 신도들이 공동생활을 했던 자리로 옮겨 ‘영산전’이란 현판을 달았다.
창립관은 고종 때 경복궁 후원, 그러니까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지어진 융문당은 왕이 과거를 주관하며 쓰던 건물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헐려 용산에 있던 일본 절의 부속건물이 됐다. 해방 직후 그걸 원불교가 사들여 서울교당 법당으로 사용하다가 지난 2007년 여기 영산성지로 옮겨왔다. 융문당과 함께 짝을 이뤘던 융무당도 이곳으로 옮겨져 마을박물관 건물로 쓰이고 있다.
창립관과 영산선학대학 사이의 연못으로 아름답게 꾸며 놓았다.
영산선학대학은 원불교의 전신인 불법연구회가 1927년 4월 원불교 초기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설립한 영산학원이 그 전신으로 원불교 교역자와 사회 인재의 양성에 힘쓰고 있다.
성지길을 따라 1.5km 에 있는 소태산 대종사 대각터로 가본다.
노루목 대각터는 1916년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진리를 깨달은 곳으로, 원불교 창교의 출발점이자 정신개벽 사상의 발원지다.
일원상을 새겨 세운 일원탑
일원탑 옆으로 조선총독기념비를 깎아내고 만들었다는 만고일월(萬古日月)이라 새긴 대각기념비가 있다. 믿음이 없이 종교 시설을 둘러 보면서 생각합니다. 종교가 추구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고, 믿음으로 끝내 지키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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