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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여행

훈몽재 선비의 길

2026년 2월 14일

전북 1000리길 중에 `훈몽재 선비의 길`은 조선 유학의 큰 별 하서 김인후 선생의 강학당인 `훈몽재`에서 초대 대법장원장이신 `가인 김병로 선생의 생가`를 거쳐 김인후가 강론과 담소를 즐기던 곳 `낙덕정`까지 조선 유학의 발자취를 새삼 느껴보며 걷는 길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하서 김인후 선생이 제자를 가르치던 전북 순창군 쌍치면에 있는 훈몽재 입구의 모습이다. 동이트기전 안개로 몽환적인 분위기지만 초미세먼지주의보가 발령된 날로 야외 활동에는 최악의 날이다.
삼연정 좌측으로 추령천변에 대학암이 있다. 김인후 선생의 제자였던 송강 정철의 친필 `대학암`이 암각되어 있는 곳이다.
강가에는 약 30명이 앉아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큰 바위에는 송강 정철 선생의 친필 `대학암`이 바위 모서리에 새겨져 있으나 아쉽게도 물속에 잠겨 볼 수 없다.
훈몽재 마당 앞쪽에는 청동기 시대부터 유행했던 남방식 고인돌이 있으며, 훈몽재에서는 가사문학의 효시로 알려진 송강 정철, 조희문, 양자징, 변성온 등 당대 유명한 학자들을 배출한 곳이다. 바로 이곳이 해동유학의 산실로 알려진 곳으로 부속 건물로는 양정관, 자연당이 있다.
현재 복원한 훈몽재 건물 뒤편에 `훈몽재 유지`로 조선 명종 때 인종의 스승인 하서 김인후 선생이 을사사화를 피해서 이곳에 내려와서 현판을 훈몽재로 정하고 강학을 했던 곳이다.
훈몽재 선비의 길은 순창 복흥면에서 위치한 훈몽재에서 출발해 숲속 데크로드 길을 지나 가인 김병로 생가, 낙덕정까지 6km를 걷게 된다.
이 선비의 길은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둔전리에 위치한 길이며, 끝나는 지점은 복흥면 상송리로 이렇게 길 하나를 두고 2개의 면을 왕래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작은 길이 아니다.
훈몽재에서 100여m 가다보면 사진촬영 장소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한장의 사진을 남긴다.
숲속 데크로드 길  이 길은 순창으로써는 섬진강의 최상류다. 그래서 오염이 전혀 되지 않고 아주 청정지역으로, 여기의 맑은 물은 옥정호를 경유해서 다시 순창으로 나와서 섬진강분류와 합류되는 강물로써 정말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다.
징검다리건너 둔전마을의 전경
추령천을 따라서 유유자적 선비의 마음과 걸음으로 걷기에 아주 편안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추령천 수변 길은 아예 알려지지 않은 곳이어서 적막하기까지 하다.
훈몽재에서 출발해서 데크 1.2km 길을 따라서 가게 되면 데크 길 끝나는 지점이 사과정이 나온다. 사과정 의미는 사향노루가 봄산을 지나니 풀이 절로 향기롭다는 뜻으로 하서 김인후 선생이 지으신 백년초해에 나오는 시 구절을 인용해서 정자 이름을 지었단다.
사과정 이후 부터는 추령천 뚝방길을 걷는다.
뚝방길을 걷다보면 추령천 건너편에 석보마을이 보이는데, 석보마을 앞들에는 `정철배미`라고 불리는 논이 있는데, 이는 송강 정철의 `공부답`(공부를 하면서 수강료로 쌀을 납부하기 위해 농사 짓는 논)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석보마을 앞 석보교에 있는 이정표는 고정이 안돼어 바람부는 데로 방향을 가르키고 있었다.
방판이 보이는 추령천의 물길은 제법 넓어지고 있다. 얼음이 얼지 않은 곳에는 어김없이 천둥오리가 보인다.
산등에 가린 아침해는 안개와 합심해서 추령천의 강물에 산수화를 그려 놓았다.
옛날 관곡을 관리했던 사창마을의 뚝방을 지나간다. 조선시대 의창, 상평창, 사창 이런 제도가 있었는데 바로 이 제도는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철에 거둬들이는 이러한 제도이며, 또 흉년일 때 곡식을 빌려주고 풍년일 때 다시 거둬들이는 이런 제도를 했던 마을이란다.
사창마을 입구에 있는 하리교가 보이고,
뚝방길을 계속 가다보면 김인후 선생의 15대 손자인 가인 김병로 선생의 생가를 가르키는 이정표를 볼 수 있다.
투구봉 밑으로 중리마을이 보인다.
마을에 들어서면 공평무사한 결정을 상징한 법관의 상징인 저울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다.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을 지내신 가인 김병로 생가다.
생가 앞에는 성품이 강직하고 또 청렴하고 결백 하다는 걸 상징하는 조형물이 있으며,
대문 입구에는 이분의 어록이 새겨져 있는데 '법관은 굶어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한다' 이렇게 문구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법에 어긋나면 친인척의 부탁도 들어주지 않았다는 이러한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법에 어긋나면 친인척의 부탁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 법조인이 너무나 당연하게 알아야 하는 것인데 참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고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는 것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김병로 생가에서 약 1km 정도 가면 작은 동산 하나가 보이는데, 여기에 낙덕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김인후 선생이 담소도 즐기고 강학도 하고 시간을 여기서 많이 보낸 곳으로, 1900년대에 들어와서 후손들이 여기에 정자를 지었다.
하서  김인후 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김인후 가 자주 찾은 낙덕암 위 우거진 숲 속에 팔모 단층의 건물을 중수하고 낙덕암의 이름을 따서 낙덕정(樂德亭)이라 하였다.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후손 가인 김병로가 어린 시절 이곳에서 공부하였다고 한다.
20세기 초반 건립된 정자로는 보기 드물게 팔모단층의 건물로 되어 있으며, 내부 가운데에는 1칸의 방을 만들어 놓고 대청을 배치한 형태이다.
낙덕정 앞 낙덕암에 앉아 당시에 읊었을 시 한수가 생각난다. 청산도 절로절로 / 녹수도 절로절로 / 산절로 수절로 / 그중에 절로절로 자란 몸이 / 늙기도 절로절로하여라. 하서 김인후는 자연에 귀의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체념한 체 시와 술을 벗 삼아 유유자적 세월을 보냈는데 마음은 오히려 태평스러웠다. 이러한 마음을 표현한 시가 `자연가`이다.
교통편이 불편하여 낙덕정에서 훈몽재까지 다시 왔던 길로 돼 돌아 간다. 왕복 약 13km 다.
길재(1353∼1419)의 시가 생각난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 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 하되 인걸은 간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태초부터 그대로다. 이렇게 산천은 그대로 있건만 그 시대의 사람들은 간 곳이 없다.
우리가 선비라고 하면 학문과 인격이 고루 갖춰져 있고 의리도 있고 지조도 있는 사람을 우리가 선비라고 부르는 것 같다. 순창의 선비의 길은 현재의 시간을 초월해서 스스로 선비가 돼서 기품과 위용을 가지고 이 지역의 역사 문화를 살펴보면서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을 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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