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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여행

녹두장군전봉준관

2026년 2월 14일

 민요 ‘새야새야 파랑새야’의 주인공으로도 알려진 전봉준은 순창군 쌍치면 피노마을에서 체포되었으며, 이곳에는 그의 생애를 기리는 녹두장군 전봉준관이 조성되어 있다.

 

 

 

 

영광정(迎狂亭)은 정읍에서 21번 국도를 따라 쌍치면에 있는 녹두장군전봉준관을 관람하러 가는 도중 추령천에 아름다운 정자를 발견하여 답사를 하기로 한다. 쌍치면 시산리에서 중안마을로 가는 길 옆 기룡암 위 바로 냇가에 위치하고 있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독립운동가 김원중 선생을 비롯해 이 지역 출신 이항노, 김정중, 설문호, 이봉운, 안종수, 송극빈, 김요명 선생 등 8인의 애국동지들은 1910년 한일병탄이 되자 미친 사람 행세를 하면서 독립군 자금 모금과 항일투쟁 활동을 전개했으며, 독립군 자금모금과 항일투쟁 협의를 위해 모임을 갖던 장소로서 그 뜻을 받들고자 1921년 정자를 건립하였다.
처마 끝에는 태극팔괘를 새겨 조국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이들의 굳센 의지를 담았단다.
추령천변 기룡암에 서서 영광정 주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추령천변에 솟은 기암에 살포시 앉은 영광정은 운치가 있읍니다. 잠시나마 애국지사들의 희생정신과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겨 봅니다.
영광정에서 약 8km 떨어진 곳에 녹두장군전봉준관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쌍치면 피노길 65-29 에 위치한다. 녹두장군 전봉준관 표지석에는 입구에 서 있는 절명시. 때가 오니 천지가 모두 힘을 같이 했건만/ 운이 다하니 영웅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백성을 사랑하는 정의로움에 부끄럼이 없건만/ 나라 위하는 오직 붉은 한마음 그 누가 알리오. 전봉준이 죽음을 예감하며 쓴 유시 '운명'이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피를 토하며 써 내려간 전봉준의 절명시를 새겨보면서, 그의 인간적인 고뇌와 끝까지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품고자 했던 정의감에 자못 장엄해진다.
녹두장군 전봉준은 1894년 말 전북 순창군 피노리에 피신해 있다가 옛 부하인 김경천의 밀고로 붙잡혔다.
김경천이라는 자는 본래 전봉준의 접사의 직에 있던 자로, 그 접주인 전봉준을 잡아 관에 인계한 자이다. 전봉준이 패하여 도로 호남으로 돌아와 순창 산중에서 거듭 거사를 도모하려는 방책을 꾀하던 중 이 기미를 안 김경천은 개인의 사득을 얻기 위하여 관병과 연락을 취하여 전봉준을 잡아주었다.
전봉준장군피체유적비 그 아래에는 피체에 대한 설명이 기록하여 놓았다. 전봉준은 1894년 12월28일 전라도 순창군 쌍치면 피노리 옛 부하의 집을 찾아갔다가 밀고로 붙잡혔다. 금구(현 김제) 전투에서 일본군에 패한 뒤 관군의 추격을 피해 은신 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전봉준관은 현재 지붕의 기와 파손으로 폐쇄되었다. 전시실에는 관련 사진과 기록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어 당시의 역사를 생생히 접할 수 있는데, 전시실에 들어갈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1893년 12월 전북 정읍시 고부면 신중리 죽산마을 송두호의 집에서 조병갑의 학정에 맞서 고부 봉기를 모의하며 작성한 사발통문. 조선 후기 동학 농민혁명의 최고 지도자 전봉준은 1890년 동학에 입교하여 고부지부의 동학교도를 이끄는 접주가 되었다. 그는 탐관오리의 횡포에 분노해 농민군을 이끌고 봉기했으며, 관군을 물리치고 전라도 일대에서 세력을 넓혔다. 이후 청일전쟁으로 외세의 개입이 심해지자 농민군을 다시 이끌고 재봉기했으나,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 연합군에 패배하고 도주하던 중 체포되었다.
1895년 2월27일 한성 일본영사관으로 압송된 전봉준이 재판소로 이송되기 직전의 모습. 일본인 사진사 무라카미 덴신이 찍은 것이다.
창의문을 선포하는 전봉준 장군의 동상
전봉준 장군이 체포되기 전 머물렀던 주막으로, 전봉준의 측근 김경천의 밀고로 조선개국 503년(1894) 12월 4일(양.12.30) 전봉준은 전라도 순창 피노리에서 민병대장 한신현에게 심한 부상을 입고 피체(남에게 붙잡힘)된다.
녹두관은 금국초등학교의 자리였는데, 1999년 2월 쌍치초등학교와 통폐합되었다.
어쩐지 이순신 장군님 동상과 그옆에 거북선이 초등생들의 동심을 심어주었던 학습자료 였는데, 학교는 사라지고 역사를 돼 짚어보는 곳으로 변하였다.
이름모를 비석들
넓다란 운동장등 한때 이곳 주변마을의 어린이들이 놀이터 였던 곳이다.
2024년이 동학혁명 130주년이다. 처음엔 반역에서 동학란으로, 또 그사이 동학농민전쟁이었다가 백주년에서야 비로소 ‘동학농민혁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름 하나 바꾸는데 백 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불의에 분연히 떨쳐 일어나 항거하는 혁명 정신을 130년 뒤 다시 떠올리게 하는 날이다. 비록 처절한 패배로 막을 내렸지만, 전봉준의 민중 사상은 의병 전쟁과 3·1 운동, 4·19 혁명, 6월 항쟁 등 도도한 역사의 흐름으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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