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관아는 조선시대 관아에 있어 동헌과 내아가 함께 남아 있었 현재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곳이며, 인근에 김제군 관아와 향교가 서로 인접하고 있어 조선시대 지방 행정과 교육을 담당하던 관청이 있는 마을의 면모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답사를 하기로 한다.
김제 충효거리는 예로부터 이름난 충신파 효자가 많았던 김제의 옛 중심거리로 조선시대의 행정기관(관아), 교육기관(향교), 성산공원(충혼길) 전통시장을 잇는 구간을 말한다. 성산공원에 있는 벽성서원은 1965년 김해 김씨 종친들에 의해서 세워졌다. 벽성서원에서 인근에 있는 김제향교로 향한다.국립중등교육기관인 김제향교는 1404년(태종 4)에 창건하였으나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 이후 한동안 중건되지 못하다가 1635년(인조 13)에 장수향교를 참고하여 재건하였다.김제향교 정문인 2층 누각 만화루는 1935년에 중건한 건물이다.만화루 담장 앞에 향교의 비석들이 있다.만화루 안으로 들어가면 학문을 가르치는 강학영역이 있다. 강학영역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명륜당과 기숙사에 해당하는 동 · 서재가 있으며,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물익공 건물로서 평면과 외관이 특색 있다. 일반적으로 명륜당은 중앙에 대청을 두고 대청 좌우에 방이 있지만 김제향교 명륜당은 대청 좌우측에도 모두 마루를 시설하였다. 지붕의 구성도 성균관의 명륜당처럼 중앙을 높게 하고 좌우측을 낮게 구성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명륜당 뒤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선현들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문묘영역이 있다.대성전 내삼문으로 들어가면 대성전과 동 · 서무가 자리하고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와 사성, 송나라의 유학자 4분의 신위를 모셨으며 동무와 서무에는 우리나라의 유학자 18분의 신위를 나누어 모셨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 전면 퇴칸를 개방하였다. 이 건물은 정면의 경우 겹처마와 이익공으로 꾸몄지만 배면은 홑처마와 간단한 초익공으로 처리하는 등 정면을 중요시 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김제향교에서 나와 향교 우측으로 성산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벽성서원이 있다.벽성서원은 1965년 김해 김씨 종친들에 의해서 세워졌다.김제향교 인근에 있는 김제관아 앞이다. 동헌은 조선시대 지방 관아의 정무를 보던 중심 건물로 지방관의 생활 처소인 내아와 구분되어 보통 그 동편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동헌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1667년(현종 8)에 김제 군수 민도가 처음 세우고 이를 ‘근민헌(近民軒)’이라 칭하였는데 1699년(숙종 25)에 중수하여 명칭을 ‘사칠헌(事七軒)’으로 고쳤고 다시 1881년(고종 18)에 중건하여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 초까지는 김제읍사무소로 사용되었다.김제관아 입구 우측부분에 있는 관리사의 모습이다.현재의 김제 관아의 정문의 모습이지만,김제의 옛 관아인 동헌 앞에는 정문인 ‘외삼문’이 장엄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100여년 전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의해 허물어졌는데, 다시 복원하기로 하여 기대를 하여 본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있다. 마당의 북쪽에는 동헌이 남향하고 있으며, 서쪽에는 피금각이 동향하고 있다. 동헌은 정면 7칸, 측면 4칸 건물로서 이익공계 팔작집이다.동헌 서쪽에는 4칸 방을 두고 방의 동쪽에는 6칸 대청을 두었으며, 방과 대청 바깥에는 모두 마루를 시설하였다. 온돌방을 갖추고 앞.뒤 출입문이 달려 간결하면서도 위엄있는 조선 관아건축의 일면을 보여준다.피금각의 '피금'은 옷깃을 풀고 마음을 나눈다는 뜻이다. 피금각은 전라도 지방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정자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서 중앙에 한 칸 방을 두고 사면에 툇마루를 둘렀다. 공포는 초익공 형식으로 제공과 첨차를 교차시켜 상부구조를 바치고 있다.동헌 현판 근민헌의 '근민'은 백성에게 가까이 다가간다는 뜻이란다.김제동헌의 뒷 모습.동헌 뒤쪽으로 돌아가자 관사 격인 내아가 나타난다. 외부에서 살림집이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ㄷ'자형 구조를 취한 건물이다. 조선시대 지방관의 살림집으로 지어진 ‘김제내아’가 전국의 내아 중에는 최초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된 건물이다.내아는 1667년(현종 8) 김제동헌이 지어질 때 함께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동헌과 함께 남아 있는 내아로서 관아의 건축물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단다.수령의 가족이 거처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폐쇄적인 구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중앙부에는 6칸 대청을 두었고 좌우 날개부에는 방과 고방, 부엌을 드렸다.중앙에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2개의 온돌방과 부엌이 있고, 오른쪽에는 다락이 딸린 부엌과 1개의 온돌방이 있다. 대청마루 앞쪽이 뒤쪽에 비해 낮다. 이는 문턱을 낮춰서 내아를 드나드는 사람들이 수시로 편하게 오가도록 한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원래 여러 부속 건물이 함께 있엇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ㄷ` 자형의 안채만 남아 있다.특히 일제강점기 이후 대부분 내아가 멸실된 데 비해 김제내아는 현재까지도 원형을 보존해 보물로서 가치가 충분하며, 관아는 옛 고을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소중한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