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라북도 여행

이웅제 고가

2026년 3월 14일

이웅재 고가는 조선초 중종때 춘성정 이담손(효령대군의 증손자)이 오수면 둔덕리 동촌마을에 터를 잡은 이래 500년간 세거해온 종갓집으로 전형적인 사대부 양반 가옥이다. 최명희 장편소설`혼불`의 배경이 된 곳으로 고가를 방문하여 본다. 위치는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오수면 둔덕2길 55이다.

 

 

 

정문 양쪽에 하마석이 놓여있어 위세가 대단한 집안임을 짐작할 수 있다. 대문채는 5칸이며 중앙부에 솟을대문을 두었다. 대문채 안쪽으로 마굿간과 창고가 갖춰져 있다.
솟을대문에 이문주의 효자 정문 현판이 걸려 있으며, 현판에는 '유명조선효자증통정대부사조참의이부위자려(有明朝鮮孝子贈通政大夫史曹參議李父胃之閭)'라고 적혀 있다.
고가는 나지막한 뒷산을 배경으로 안채·사랑채·안행랑채·대문채·사당으로 구성돼 있으며,
축대 위에 서 있는 사랑채는 맞배지붕의 一자집이다. 각각 2칸의 방과 마루로 구성되었으며,
안행랑채는 안채를 가리는 역활을 하고 있다.
사랑채 우측으로 장독대와 담장 각진곳에 작은 뒷문이 있다.
남자들은 정문으로 출입하고 여자들은 사당쪽 뒷문으로 출입했다고 하니 남녀차별이 심한 옛 풍속을 짐작할 수 있다.
뒷문에서 바라본 고택의 모습.
사랑채 뒤로 안채로 가는길.
이웅재고가는 효령대군의 증손인 춘성정 이담손이 무오사화 때 정착하여 500년 넘게 20대째 이어온 종가다. 이 춘성정 종가는 왕손의 저택이지만 규모가 크거나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느낌마저 있다. 이 종가는 뒷마당에 있는 굴뚝의 높이가 낮다. 힘들게 생활하는 이웃들이 있는데, 종가에서 음식을 마련하며 불을 피우는 연기가 나오는 것조차 삼가는 배려였다고 한다.
안채 뒷 모습.
행랑채와 안행랑 사이로 들어가 본다.
안행랑채는 방아실, 안변소, 광, 책방으로 구성됐으나 근래에 외양간을 마련했다.
안채는 축대 위에 남향으로 대청마루와 연결하여 지었고, 대청을 가운데에 두고 왼편으로 안방을 두고, 오른쪽으로는 도장방이 마주하고 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몸채에 동서 양측으로 날개를 달아 'ㄷ'자형을 이루고 있다. 몸채는 각각 2칸의 안방과 대청이 이어지며 대청 동측에 건넌방 대신에 도장을 설치했다.
500년 넘은 한옥이 그대로 보전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1909년에 전체적인 중수가 있었단다.
마루안채와 안행랑채가 엇비스듬히 만나는 곳에 중문이 있다. 이 중문을 나서면 사당을 바라보며 사랑채 뒤로 나오게 돼 있다. 흠이라면 사당채로 건너가는 문 위에 슬레이트 지붕이 있다. 아마도 빗물을 막기위해 최근에 만들었나 보다.
조상의 위폐를 모시는 사당은 정침뒤 동쪽에 3칸으로 지어져 있다. 일반인들은 4대까지 집안에서 제사를 지내다가 5대손이 나오면 산에 모시고 시제를 지내는데, 이웅재 고가는 왕가라고 해서 바깥에 나가 시제를 지내지 않고 집안에 모셨단다.
이웅재 일가는 세도가였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신망도 두터웠음을 알 수 있다. 1919년 3·1 독립 만세 운동에 중심 동력으로 참여하였으며, 이 둔덕이씨 가문에서 17명이 일경에게 체포되었다고 한다. 종택을 팔아서 독립자금으로 지원했다는 이야기도 구전한다. 조선중기 종가의 규범을 지키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위엄을 갖추었으면서도 드러내지 않는 품위를 갖추고 있는 고가이다.

'전라북도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창 양지천 꽃잔듸길  (1) 2026.05.10
전주 건지산길  (1) 2026.04.27
광제정  (0) 2026.03.24
임실 만취정  (1) 2026.03.21
순창 구암정  (0) 2026.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