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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여행

이사재

2021년 6월 8일

남사예담촌을 둘러 보던중 이순신 장군과 연관이 있는 이사재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 보기로 한다.

이사재는 이순신 장군이 권율 도원수부가 있는 합천으로 가던 정유년(1597년) 6월 1일에 하룻밤 유숙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사재는 조선전기 임꺽정의 난을 진압하여 공을 세운 박호원의 재실(齋室)이다.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예담촌을 한눈에 조망하면서 걸을 수 있는 둘레길이 2.4㎞ 정도가 아름다운 하천을 따라 조성되어 있다.

이사재(尼泗齋))는 남사예담촌 뒤편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박호원은 선조임금 때 대사헌과 호조판서를 지낸 인물이다. 
이순신 장군이 유숙한 곳으로 고증된 ‘박호원의 농사짓는 종의 집’이 있었던 곳에는 현재 ‘이사재(尼泗齋)’라는 재실이 있고, 입구에 백의종군 유숙지 안내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충무공 일행은 1597년(정유년) 6월 1일 하동읍성을 출발해 산청군 단성 땅과 진주 땅의 경계에 있는 박호원의 노비가 농사짓는 허름한 집에서 하루를 묵었다고 한다. 밤새 내리는 빗속에 방마저 험하여 선잠을 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정유년 6월 1일). 비록 당시 장군이 묵었던 집은 없지만 충무공의 심정이 어떠했을지를 생각해 본다.
이사재 외삼문이 있는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니 작은 마당을 사이에 둔 여념집이다. 송월당의 후손이 살고 있는 가옥인데 이 자리가 충무공이 유숙했던 박효원의 농사를 짓던 노비들이 살던 집이 있었던 곳일까? '이사재' 아래에는 후손이 살고 있다. 후손이 사는 집 마당을 가로질러 계단을 천천히 올라간다.
마당을 가로 질러 수직으로 쌓아 올린 높다란 축대를 지그재그의 계단을 오르니까,
이사재의 출입문인 ‘거유문’이라는 현판이 달린 작은 대문이 열려 있다. 
이사재이다. 벼랑의 둔덕에 자리를 잡아서 마당은 손바닥만 한데 암벽을 등진 삼칸 고옥 이사재는 정적 속에 숙연하다. 대청마루로 오르는 중앙의 마루턱을 오르기 좋게 두 계단으로 층을 지웠고 양 편으로는 계자난간을 둘렀는데 방 뒤로 돌아 갈수 있게 좌우와 뒷면까지 툇마루를 깔았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로 홑처마 팔작지붕을 갖추고 있으며, 전형적인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이다.
옆 마당에는 장방형의 연못을 팠다. 안쪽 사면을 두 단으로 축대를 쌓아 반듯하게 꾸며 놓은 연당이 정원의 정취를 그윽하게 품어낸다. 뒤뜰의 암벽 밑에는 폭은 한 뼘 남짓한데 가로길이는 한 팔 길이 정도인 바위샘은 지금은 석간옥수가 매말랐다.
연당가의 배롱나무는 잡초에 묻혀 처량하다.
이사재의 매화나무(박씨매)
이순신 장군은 잠자리가 불편한 가운데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일찍 길을 떠나 단계천변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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