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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여행

남자현 지사 생가지

2021년 7월 20일

경상북도 영양군을 스쳐 지나갔는 지는 모르지만 목표를 세우고 간적은 한번도 없다. 영양군에는 조선시대 3대 정원 중 한곳인 서석지가 있다는 말에 서석지와 영양군을 관광하기로 한다. 911번 지방도로를 타고 석보면사무소 방향으로 가다보면 지경마을이 나오는데, 도로가에 독립운동가 남자현 지사 생가지가 나온다. 현재 생가지는 보수공사 관계로 주변이 어수선하여 답사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몇장의 사진을 얻고, 그 분의 숭고한 뜻을 가슴속에 새긴다. 

 

남자현 지사 생가지 좌측으로 손에 혈서 ‘조선독립원’ 천조각을 형상화 한 동상이 있다. 1932년 국제연맹조사단의 리튼 경이 하얼빈에 오자 무명지를 끊어 흰 수건에 '조선독립원'이라고 혈서를 쓴 뒤 이를 끊어진 손가락과 함께 보내 독립을 호소했다. 
동상 옆으로 남자현 지사 `항일 순국비`가 있다.  
남자현 지사 생가지 전경.
남자현 지사 생가 솟을 삼문인 대문채
솟을대문 안쪽으로 좌측에 문칸방을 들이고, 우측으로 2칸의 헛간이 있다.
본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집 홑처마로 토석담장을 두른 독립적인 건물인 남자현 지사 생가.
남자현 지사는 1872(고종 9)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나 만주에서 독립운동과 여성계몽운동에 주력한 독립운동가이다. 남편이 일본군과 싸우다 죽자 유복자를 기르면서 시부모를 모셨고 을사조약 이후 의병으로 활동하던 친정아버지를 도와 장정을 모으고 정보를 수집했다. 3·1운동 이후 만주로 망명해 서로군정서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부상당한 투사들을 간호했으며, 지린성에 교회를 세우고 여성교육회를 조직해 독립운동과 여성계몽 활동을 했다. 1932년 국제연맹조사단의 리튼 경이 하얼빈에 오자 무명지를 끊어 흰 수건에 '조선독립원'이라고 혈서를 쓴 뒤 이를 끊어진 손가락과 함께 보내 독립을 호소했다. 다음 해 일경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으나 강인한 의지로 단식투쟁을 하다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1933년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라는 말을 남기고 하얼빈의 여관에서 생을 마감했다.

 

남자현 지사 `추모각`
남자현 지사 생가지에서 200여미터 떨어진 곳에 `의병장 이현규`의 묘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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