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0일
부여에 들어서면 시가지 북쪽에 검푸른 숲을 이룬 해발 106m 의 나지막한 부소산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다. 부여의 진산인 부소산에는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낙화암, 백화정, 사자루, 반월루, 궁녀사, 고란사, 해맞이하는 영일루, 성충ㆍ흥수ㆍ계백의 백제 충신을 모신 삼충사, 곡식 창고터였던 군창지, 백제 군인의 수혈병영지등 발길 닿는 곳마다 발걸음을 붙잡는 토성들, 백제의 역사와 백제왕실의 이야기가 곳곳에 배어 있는 부소산성을 답사한다.
부소산문 매표소에서 2,000원을 지불하고 부소산성길로 들어 선다. 입장시간은 09시로 되어있는데, 08시 30분에도 입장할수있다.
이정표가 잘되어 있다.
삼충사 부소산성 정문인 사비문을 지나 조금 걸어올라가면 삼충사가 있다. 외삼문과 내삼문을 지나 사당에 들어서면 백제말 삼충신인 성충, 흥수,계백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해마다 10월 백제문화제때 제향을 올리고 세분의 숭고한 구국충절을 기린다.
영일루는 부소산성의 맨 동쪽 산봉우리에 세워져 백제왕과 귀족들이 멀리 계룡산의 연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며 국정을 계획하고,나라의 태평과 백성들의 평안을 기원했던 영일대에 세운 누각이다.
군창지 일명 만리창이라 불렀던 이곳은 1915년 불에 탄 쌀이 발견된 군대 곡식을 보관했던 창고이다.
군창지를 조금 지나면 수혈병영지다.
반월루는 백마강이 반달모양으로 끼고 도는 부여 시가지가 휜히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세운 이층 누각인데, 사실 올라 가서 보면 나무가지에 가려 전망은 별로다.
부소산 가장 높은 곳(해발 106m)에 위치한 사자루는 동쪽 영일루와 더불어 일월 음양을 뜻하며 달이 밝은 밤 누각에 오르면 아름다운 경치가 눈앞에 펼져지고 시흥이 절로 일어난다는 누각이다. 사자루 건립 당시 터를 파다가 광배 뒷면에 명문이 새겨진(정지원명) 금동석가여래입상(보물)이 발견되었다. 사자루 현판 글씨는 의친왕 이강의 친필이고,
뒤쪽에 붙은 白馬長江은 서예가 해강 김규진의 작품이다.
낙화암 절벽위에 세워진 육각지붕의 정자가 백화정이다. 백마강을 시원하게 내려다 볼 수 있는 백화정은 백제멸망 당시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숭고한 백제 여인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에 부풍시사라는 시모임에서 세웠단다.
낙화암 전망대
부소산 북쪽 백마강을 내려다보듯 우뚝 서 있는 바위 절벽이 낙화암이다. 낙화암은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게 유린될 때,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백마강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낙화암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백마강.
고란사 전경.
낙화암 아래 백마강가 절벽에 자리하고 있는 고란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백마강을 바라보는 주위경관이 비길데 없이 아름답다.일설에 의하면 이 절은 원래 백제의 왕들을 위한 정자였다고 하며, 또 궁중의 내불전이었다고도 전한다. 백제가 멸망할 때 낙화암에서 사라져간 삼천궁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1028년(고려 현종 19)에 지은 사찰이라고도 한다.
고란사 뒤 바위 틈에 고란정이 있으며, 그 위쪽 바위틈에 고란초가 나 있다.
고란정 안쪽에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약수와 고란초의 전설이 유명하다.
낙화암의 기암절벽을 보러 유람선을 타기로 한다. 편도 6,000원.
소정방이 바위에 걸터앉아 백마를 미끼로 용을 낚았다는 전설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믿거나 말거나? 다소 황당한 전설이다.
백제 마지막 순간까지 지키려 했던 백제 여인들의 충절과 넋이 어린 곳이 바로 낙화암이다. 바위 절벽에 새겨진 적색 ‘낙화암(落花岩)’이라는 글씨는 조선시대 학자인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글씨이다.
구드래선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