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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여행

설씨부인.신경준선생 유지

2023년 3월 18일

아들을 낳고자 하는 옛 여인들의 간절한 마음을 안고 다녔던 순창 여인들의 길을 따라 산동리와 창덕리남근석을 답사하고  설씨부인의 살았던 고택을 찾았다. 설씨부인 신경준 선생유지는 조선 중기의 문신 신말주와 부인 설씨부인을 비롯하여 신말주의 10세손 신경준 등 후손들이 태어나고 살았던 곳으로,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에 위치한다. 이곳은 일명 귀래정 신말주 후손 세거지로 알려져 있으며, 1994년 8월 10일에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설씨부인(1429~1508)은 귀래정 신말주와 혼인하였다. 신말주는 신숙주의 아우이다. 1416년(세조 2)에 벼슬을 버리고 부인과 함께 순창의 처가로 낙향했다. 이후 이들의 후손이 이곳에서 대대로 살았다. 설씨부인은 문장과 서화에 능하였다. 1482년(성종 13)에 강천사 불사를 위해 쓴 설씨부인 권선문첩(보물, 1981년 지정)과 강천사를 그린 채화 14첩이 전해진다. 신말주의 후손인 신경준도 이곳에서 출생하였다.
마을이 경사진 곳에 위치하여 골목길을 따라 들어오면 축대위에,
외삼문인 일관문(一貫門)이 나오고,
일관문으로 들어서면 왼편에 만재 고령신공당식 공적비(晩哉高靈申公瑭植功績碑)와 오천(梧川) 신익휴(申翼休)공 공적비가 있으며,
안채로 통하는 여견문(如見門)을 들어서면,
정면에 자혜당(慈惠堂)으로 신말주 선생의 부인 설씨부인이 살았으며, 대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내외벽'이 인상깊다. 남녀가 유별하던 시절 외부인이 안주인을 찾아오면 '내외벽'에 서서 안주인이 정장을 차려입을 때까지 기다리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자혜당 우측으로 남애정사(南厓精舍)가 있으며,
좌측으로 담장이 있으며 협문안으로 들어가면, 사당인 남산사(南山祠), 남산사창건기(南山祠創建記)의 비가 있다.
신숙주 집안의 5형제 중 막내였던 신말주는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나고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27세에 낙향하여 그 후손이 대대로 거처한 곳이다. 나중에 형님의 권유로 사간원 우헌납 등 여러 관직을 거쳤지만 다시 낙향했다. 신경준은 신말주의 후손이다.
자혜당담장을 넘어 유장각(遺藏閣)에는 문화재가 보관되어 있는데, 정면에 귀래정연혁비(歸來亭沿革碑)가 세워져 있고, 유장각 우측 편에는 충서당(忠恕堂)이 있으며, 충서당 뒤쪽 언덕에는 귀래정(歸來亭)이 있다.
신숙주 집안의 5형제 중 막내인 신말주 선생의 호를 따라 지은 '유장각' 앞에 씌어진 설씨부인과 신말주의 작품에 대한 기록이 있는 안내문의 내용은 이곳 설씨부인과 신경준선생에 대하여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
충서당 뒤쪽에는 귀래정(歸來亭)으로 가본다.
귀래정은 조선 세조 2년(1456) 신숙주의 아우인 신말주가 지은 정자로, 신말주는 수양대군(세조)이 조카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오르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켜 벼슬에서 물러나 순창으로 낙향하였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안쪽에는 서거정이 지은 귀래정기와 강희맹의 시문을 보존하고 있다.
귀례정 밑으로 바위군락지역에 정부인 순창설씨 암각서 가 있다.
오늘 이곳에 와서 새롭게 각인된 내용은 조선시대 지리학자는 김정호로 알고 있지만 전통지리서 `산경표`를 편찬한 신경준 선생이 바로 그다. 조선 영조(1769) 때에 편찬된 `산경표`는우리나라 지리를 사실에 근거하여 15개 산줄기(백두대간, 1정간, 13정맥)로 나누고 1650여개 지명과 1500여개의 산과 고개 등을 일목요연하게 표기하였다. 또한 10대 강줄기를 유역별로 나누어 자세하게 수록해 놓은 우리 민족의 전통지리서이자 산의 족보이다. 이 산줄기 체계는 1900년대 초까지는 국가 공인 개념으로 사용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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