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구천동 일사대(一士臺) 일원은 무주 구천동의 3대 경승지 중 하나로, 2009년에 명승 제55호로 지정되었다. 일사대는 수성대라고도 하는데, 나제통문에서 6.1㎞ 지점, 학소대에서 상류 0.3㎞ 지점에 있다. 서벽정(棲碧亭)의 서쪽에 우뚝 솟은 기암이 배의 돛대 모양을 하고 있는 일사대(수성대)다.
일사대는 거유(巨儒)로 칭송받는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과 관련이 깊은 경승이다. 그는 송시열의 후손으로 1836년 대전에서 태어났으며 학행이 뛰어나고 덕망이 높아 일찍이 서연관, 경연관의 벼슬을 받았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송병선은 오로지 고향에서 학문에만 전념하고 구한말 쇠퇴하는 국운을 주시하며 지냈다. 그는 고종의 스승을 지내기도 한 학자였다. 현실정치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고종으로부터 18번이나 대사헌의 벼슬을 받았으나 끝내 거절했다고 한다.
성리학을 바탕으로 춘추대의의 선비정신을 지녔던 송병선은 1876년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자 통탄했으며, 1905년 일제에 의한 강압적인 을사조약으로 식음을 전폐했다. 그는 수많은 상소를 올려 나라를 팔아먹은 적신들의 죄를 엄히 다스리고 조약을 철폐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임금 앞에 나아가 “폐하의 앞자리가 곧 제가 죽을 자리이니 주청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물러가지 않겠습니다” 하고 자신의 뜻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1905년 유소(遺疎)를 쓰고 자제, 문생, 전국 유림에게 고하는 유서를 만든 다음 약을 마시고 자결하였다. 이처럼 송병선은 일제의 침략으로 나라를 잃게 된 위기에도 굳건히 절의를 지키다 순절한 우국지사였다. 그분의 은둔처 그곳을 답사하러 들어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