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6일
김면 장군 유적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다가 순국한 송암(松庵) 김면(金沔, 1541~1593) 장군의 묘소, 신도비, 사당 도암사, 도암재, 그리고 도암서당으로 이루어진 사적지이다. 김면 장군 유적은 고령군 쌍림면 고곡리 칠등마을에서 북쪽으로 500m 떨어진 곳에 있다
김면 장군의 유적지 전경으로, 석축 계단위로 외삼문(지심문)이 보인다.
김면은 1541년 4월 1일 경상도 고령 양전동에서 경원부사를 지낸 김세문과 부인 김해 김씨 사이에서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성리학의 대가인 남명 조식을 스승으로 모셨다. 조식은 송암(松庵)이라는 현판을 자필로 써주었으며, 김면은 이를 자신의 호로 삼았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김면은 고령, 거창 우척현 등지에서 일본군을 격퇴했으며 그 공로로 합천군수가 되고 의병대장의 칭호를 받았다. 그는 1593년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충청도, 전라도 의병과 함께 적을 격퇴시킬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여러 달 동안 의갑을 풀지 않은 채 근무하던 그는 누적된 피로로 인해 그해 진중에서 병사하였다.
외삼문(지심문) 안으로 들어 가면 누각인 상평루 가 고풍스럽게 다가 온다.
상평루 2층 누각 안 모습.
상평루를 지나면 정면으로 강학공간인 도암서원이 자리하며, 양옆으로 동재(경문재), 서재(수의재) 가 있다.
도암서원은 김면과 이기춘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마루바닥 안쪽으로 묵일당 현판이 눈에 들어 온다.
도암서원 마루에서 내려다 본 모습.
도암서원 뒤 도암사 담장밑으로 배롱나무 가 줄지어 늘어선 모습으로 꽃이 피면 이쁠것 같다.
김면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도암사
사당옆으로 도암서당이 나란히 있다.
장군은 오로지 나라만이 있는 줄 알았고, 내 몸이 있는 줄은 몰랐다. 라는 충절의 말씀을 남기고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