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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여행

무장읍성

2024년 3월 30일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읍성길 45에 위치한 이곳 `무장읍성`에서 동학 농민혁명이 맨 처음 봉기하였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이곳 무장면은 고려 시대까지 무송과 장사의 두 고을이었던 것을 효과적인 왜구의 방비를 위하여 1417년(태종 17) 합하여 두 고을 첫 자를 떼어 "무장"이라 하고 성과 관아를 새로 마련하였습니다. 또한 무장읍은 1894년 3월 20일 동학 농민혁명의 전국적 전개를 알리는 무장기포가 일어난 곳으로 동학 농민 혁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무장읍성 남문입니다. 성 주위를 둘러싼 물길인 해자는 폭 4m 길이 574m 정도로 그 흔적만 남아있습니다.
수령이 오래된 괴목이 있는 이곳은 남문 좌측으로 전에는 해자가 있던 곳인데 지금은 메워져 없었졌습니다.
무장읍성의 남문 옹성위로 올라와 누각인 진무로를 보고 있습니다. 진무루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2층 건물입니다.
무장읍성의 둘레는 약 1,400m, 넓이는 43.847평으로, 성내에는 객사, 동헌 진무루 등 옛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고 건물 주변에는 여러 가지 유구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객사와 주변의 오래된 고목이 잘 어우러져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느낌이 듭니다.
1415년 새롭게 탄생한 무장현은 병마사가 현의 업무를 관장한 군사적인 성격이 강한 현이었다. 1417년(태종 17)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서 전라 병영을 내륙의 광산현에서 연해 지역인 지금의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방어 지역이 중첩되자 전라남도 나주시 영산포에 있었던 목포진을 무장진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남문에서 동쪽으로 가다보면 읍취로와 그앞으로 연못이 있습니다. 연못뒤로 군기고가 있는데, 군기고 주변에서 2018년 11월 15일 11점 의 비격진천뢰를 발견했습니다.
연못주변의 2층 누각은 고을 사또가 군민들의 의견을 청취한다 하여 읍취루라고 합니다.
읍취로 앞의 연못으로 연못 중앙부에는 사각형의 섬이 있는데,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의 사상에 따라 원래는 원형이었던 것이 후대에 변형된 것으로 보여 지며, 이 연못은 사두봉의 전설에 나오는 용소이며, 예로부터 이곳에서 안개(용이 뿜는 김)가 솟아나와 고을을 뒤덮으면 경치도 좋고 이 기운으로 고을 사람들이 부귀를 누리게 되며, 많은 인걸이 배출되어 무장현의 세가 매우 드높았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마을의 걱정과 근심을 막고자 뱀의 머리에 해당하는 사두봉을 깎아 연못을 매웠으며, 이로 인해 무장에서 인물이 나지 않을 것을 우려해 예전 사두봉 높이만큼의 느티나무를 심고 개구리 연못을 만들어 고을이 계속해서 번영하게 했다는 비보풍수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객사 뒤로 언덕을 사두봉이라 한답니다.
무장객사(송사지관)는 관청의 손님을 맞이하고 연회도 베풀었다고 한다. 웅장한 객사 건물을 중앙으로 하여 주변에 수백년된 노거수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옛 객사 건축의 전통미와 자연미가 잘 어우러진다.
무장읍성 객사(현판 송사지관)는 우리나라 객사중 유일하게 객사와 기단이 원형으로 유지된 곳이다. 객사는 송사관( 松沙館 )이라 하여 옛 무송 장사의 끝자를 따서 이름 지었다 .
계단 오른쪽 난간에 호랑이 문양이 있으며,
계단 왼쪽 난간에는 구름 문양을 볼수 있다.
기단 왼쪽 모서리 부분에 연꽃의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기단 오른쪽 모서리돌에는 화병이 그려져 있는데 석재는 사찰의 기단석을 철거한 석재를 재사용한 것으로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을 엿볼 수 있다.
무장면의 송덕비
전설에 나오는 객사 뒤 사두봉의 느티나무.
무장읍성 북쪽방향에 동헌으로 가보겠습니다.
동헌의 솟을삼문으로 문간채다.
보수공사 중인 무장읍성 동헌 취백당은 소나무처럼 푸르고 모래처럼 흰 결백으로 정무를 보란 뜻이다.
동헌은 일제강점기 군부대 사무실, 광복 후 무장초등학교 교실로 사용되는 등 고난의 역사 현장이다.
무장동헌 앞에도 연지가 있다.
무장면 고지도와 문현성의 기록에 의하면 무장읍성 내에는 객사 뒤편 사두봉을 중심으로 뱀의 눈처럼 좌.우에 2개의 연못이 있었다.
무장읍성 감옥 터로 최여겸이 순교 한 곳이다.
그동안 흙으로 축조된 토성으로 알려져 왔던 이 성이 공사 때에 성벽 동쪽 끝부분의 단면이 드러났었는데 성곽일부가 흙과 돌을 섞어서 축조된 것임이 밝혀졌다. 1915년에 발견된 '무장읍지'에 의하면 조선 태종 17년(1417) 병마사 김저래가 여러 고을의 백성과 승려 등 주민 2만여 명을 동원하여 그해 2월부터 5월까지 만 4개월 동안에 축조했다고 전한다.
무장읍성은 조선시대 읍성 가운데 건립 연대가 정확하게 알려진 보기 드문 사례다. 또 조선시대 옛 읍성의 모습을 연구하고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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