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라북도 여행

백관수 고택

2024년 3월 30일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성내면 도덕길 58에 위치하고 있는 백관수 고택을 찾아갑니다. 백관수 선생은  3·1운동 직전 일본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을 주도했으며, 그후 언론계에서 활동하다가 해방 후 제헌의원으로 대한민국의 헌법과 정부를 조직하는 데 참여했습니다.

 

 

 

 

고창 백관수 고택을 찾아가는 길에 흥덕농협하나로마트 성내점 앞 삼거리 주변에 위치하고 있는 흥동장학당을 답사합니다.
흥동장학당은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지원하고 후학을 양성했던 곳 입니다.
흥동장학당의 건물입니다. 독립운동가 백관수 선생을 비롯한 96명의 장학계원들이 상해임시정부에 보낼 군자금을 모집하고 후학양성을 위해 1931년에 지은 것이다.
1914년 봄 부안군 내소사에서 백낙윤, 이순렬, 이석렬, 황상익, 백관수, 이휴열, 이갑수, 황서구등이 발기하고, 성내면 중심의 98명의 지역 유지들이 모여 흥동장학회를 조직했다. 이후 고창의 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하였으며 계원들이 낸 자금으로 성내보통학교와 고창고보 설립을 후원했다.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활용되어 왔던 흥동장학당은 항일 애국지사들의 넋이 서린 유서 깊은 곳입니다.
생근저수지 윗쪽에 자리하고 있는 백관수 고택입니다. 대문은 본래 사랑채 동단에 있으나 마당 서쪽에 새롭게 문을 만들면서 이 문이 주 대문같이 보인다.
고택 뒷뜰에 백관수선생 출생지 표지석.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 곳간채로 이루어진 중농규모의 남부지방 민가이다. 대숲이 감싸는 완만한 경사지에 석축을 쌓고 안채를 남향하여 배치하였으며, 마당을 사이에 두고 앞에는 사랑채가 있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일자집이다. 부엌 옆으로 2칸의 방이 있고 이어서 건넌방과 그 앞에 마루방이 있는 구조이다.
사랑채 서쪽에 3칸의 곳간채가 지붕을 맞대어 나란히 위치함에 따라 집의 전체적인 배치는 두이(二)자형을 이룬다.
사랑채는 안채보다 낮게 외벌대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이며 안채와 같이 일자집이다.
곳간채는 3칸 2칸의 규모이다. 처마 끝은 사랑채와 맞닿아 있지만 평면은 한 칸 정도 떨어져 있어 이곳에 사랑마당으로 통하는 쪽문을 냈다. 3칸 중 한 칸은 전면을 터서 헛간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두 칸은 마루를 깔고 곡식과 항아리 등을 보관하였다. 남부지방의 소박한 민가의 모습이다.
사랑채와 곳간채의 사이.
사랑채 앞 좌측으로 쪽문이 있으며,
쪽문 바로 위쪽으로 고택의 본래 대문의 모습입니다.
백관수 고택의 사랑채.
고택뒤 야산에 백관수 선생의 가묘입니다. 3.1운동 직전 일본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을 주도했으며, 언론계에서 활동하다가 해방 후 제헌의원으로 대한민국의 헌법과 정부를 조직하는 데 참여한 인물이다. 1919년 일본에서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해 단장이 되었고, 1937년 동아일보사 제7대 사장에 취임하여 1940년 일제의 동아일보를 강제 폐간 조치에 저항하다가 종로경찰서에 1개월간 구금되었다. 1948년 5.10선거에서 제헌의원으로 당선되어 초대 법제사법위원장과 헌법 및 정부조직법 기초위원을 지냈으며, 6.25전쟁 때 납북되어 북한에서 죽었다.
근처에는 수원 백씨 문종 백산사가 있다.

 

 

'전라북도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팔복예술공장  (12) 2024.06.16
신기한 음식(모양)돌  (38) 2024.05.02
만정 김소희 생가  (15) 2024.04.23
미당 서정주 문학관  (15) 2024.04.18
무장읍성  (14) 2024.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