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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여행

신기한 음식(모양)돌

2024년 4월  14일

신기한 음식모양을 하고 있는 돌이 TV를 통해 방영되고 있었다. 호기심 과 궁금증에 관람을 하기로 한다. 마침 화사 한 4월의 꽃잔치를 여는 전주 완산칠봉 꽃동산 과 신비한 돌이 있는 전주한옥마을을 방문하기로 한다.

 

 

 

 

전주시 동완산동 곤지산 골짜기에 봄이 절정을 넘긴 즈음에 겹벚꽃과 철쭉이 화려하게 피어 꽃동산이 펼쳐지는 공원이다.
겹벚꽃 터널 이곳에서 많은 분들이 인생사진을 촬영하는 곳이다.
겹벚꽃은 꽃잎이 여러 겹으로 피는 벚꽃으로 갓난아기 주먹정도의 꽃봉우리가 탐스럽고 화려하다.
핑크빛 겹벚꽃과 울긋불긋한 철쭉이 환상의 콜라보를 연출하고 있다.
겹벚꽃과 영산홍으로 화려한 전북 전주의 완산칠봉 꽃동산의 모습. 야트막한 산동네 공원 꽃밭이라서 꽃동산은 더 빛을 내고 있었다.
전주 한옥마을 태조루 입구에 있는 전동성당은 천주교 최초 순교자의 한 맺힌 사형 터에 세워졌다.
전동성당 구내에서 추억을 만들고 있는 또래의 여성들 교복으로 갈아입은 모습에 눈길이 간다.
전주한옥마을에 있는 전주전통문화연수원은 연수와 교육이 가능한 전주동헌과 연수생들이 숙박할수 있는 99칸의 고택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비들의 학문과 예절, 문화를 통해 소통과 배려의 정신,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소중한 경험이 되는 곳이다. 99칸의 고택은 전라북도의 3곳의 고택을 이곳으로 이전하여 일반인들도 답사할수 있다.
연수원의 솟을삼문을 들어서면 정읍고택이 보이는데, 보천교를 창시한 월곡 차경석(1880~1936)이 정읍 대흥리에 세운 50여 채의 보천교 본당 부속 건물의 하나로 전해진다.
1936년 보천교가 해체된 뒤, 정읍지역의 유지가 사들여 정읍시 장명동으로 옮긴 것을 1988년 박성기님(박중조의 부친)이 내장산으로 다시 옮겨 사용하였다. 자연공원법의 제정으로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고택의 유지 보수가 용이하지 않아 점차 폐가로 쇠락해 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소유자 박중조님이 2010년 전주시에 기증함으로써 2011년 6월 이전 복원하여, 전주전통문화연수원에서 활용하고 있다. ㅁ자 건물의 정읍고택은 보온 효과를 높이고 바람을 막으려는 북부지방의 한옥 양식으로, 중부지방 이남에서는 보기 드문 건축물이다.
이어서 담장 넘어로 임실 진참봉 고택(사랑채)를 답사 하겠습니다.
임실 진참봉 고택 사랑채 건물은 임실군 임실읍 성가리에 소재한 진참봉댁 고택 사랑채를 옮겨 온 것으로 정확한 건축연도는 알 수 없다. 안채는 용인 민속촌 조성 시 매각되어 이축되었는데, 이 사랑채는 김봉순 씨가 매수하여 생활해 오던 중 임실군 도시계획에 의한 도로개설사업 당시 철거 예정이던 건축물을 전주시가 온전하게 인수하여 장현식 고택 옆에 이축하였다.
임실 진참봉 고택 사랑채 뒤로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사업가이며 정치가인 일송 장현식 선생의 안채로 들어가는 수신문으로 들어서면,
일송 장현식 선생이 1932년 고향인 김제 금구면 서도마을에 건축한 한옥을 전주한옥마을로 옮겨 왔다. 장현식 선생의 후손인 장남 장홍 씨가 2007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김제시 금구면 전통한옥(안채와 중간채) 일체를 기부했으며 전주시는 이를 전주한옥마을로 이축, 2009년 12월 새로 단장하기에 이르렀다. 장현식 선생 고택은 1930년대 전통방식으로 건축한 한옥으로, 근대 한옥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건축물이다. 목재가공의 수준이 아주 정교해 전통한옥으로서 건축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미닫이 문으로도 활용할 수 있게 고안된 안채의 퇴창문은 보는 재미 뿐만 아니라 한옥 대목수의 지혜를 느낄 수 있는 보기 드문 문이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이 고택의 의미는 일제하 독립투사로 평생을 바친 일송 장현식 선생의 항일구국의 원천이자 나눔과 섬김의 정신으로 대동세상을 실현하였던 의로운 기상이 담긴 곳, 고난의 연대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 장씨 가문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함께 하고 있기에 특별함이 더하다.
장현식 고택에서 전주동헌으로 바로가는 협문이 있지만, 전주동헌의 대문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전주향교 옆 골목에 있는 박진 효자비를 잠시 답사한다. 이 비석은 1398년(조선 태조)에 세워진 것을 1724년(조선 경종)에 중각한 것이다. 비각 안에는 1805년(조선 순조)에 후손 필성이 지은 '전주부 효자박진정려기'가 걸려 있다.
박진은 아버지가 갑자기 병환으로 관직에 나간지 불과 1년여만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시중을들면서, 낮에서 곁을 떠나지 않고 밤에는 허리띠를 풀지 않았다고 전한다. 또한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3년 동안을 여모살이를 하여 마을 사람들이 칭송하였다고 전한다.
전주향교 옆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전주동헌 대문이 나오는데, 이런 문이 잠귀어 있다. 군자는 대로행이라고 했거늘, 다시 장현식 고택으로 가서 협문을 이용하여 풍락헌을 답사한다.
전주 동헌인 풍락헌(豊樂軒)은 음순당으로도 불리었으며 조선시대 전주부윤(종2품)의 업무공간으로 지금의 전주시청에 대응된다. 조선 초에 건립된 후 일제강점기 일제가 조선말살정책을 펴면서 1934년 민간에 매각되었다. 당시 동헌을 구입한 전주유씨는 이를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로 옮겨 문중의 제각으로 사용하였다. 동헌의 상징성과 역사성을 되살리기 위하여 2009년 당시 송하진 전주시장의 노력으로 소유주인 유인수 선생이 제각 건물을 전주시에 쾌척(2007년)함으로써 한옥마을로 옮겨졌다. 동헌이 전주를 떠난지 75년만의 귀환이다.
동헌은 120여년 된 옛 건축물로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고, 현판인 풍락헌은 『조선왕조의 발상지 풍패지향 전주(豊)를 안락(樂)하게 하는 집(軒)』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다른 이름인 음순당은 『임금의 덕이 마치 가장 순수한 술을 마신 것처럼 모르는 사이에 취했다가 깨는것처럼 임금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의미이다.
처음에는 정면 7칸 측면 4칸의 28칸 팔작한옥이었던 동헌은 옮기는 과정(1934년)에서 정면 한칸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으나, 2009년 현위치에 28칸으로 원형복원되어 이축되었다.
풍락헌의 옛날 사진.

 

벽화마을로 유명한 자만동에서 전주향교 쪽으로 내려다보면 쌍시암이란 동네를 만나게 된다. 이곳은 예부터 서로 마주보는 쌍샘이 있던 곳으로, 묵샘골이라고도 불렸다. 전주시지에 따르면 묵샘골은 자만동 즉, 오목대와 이목대 사이의 작은 골짜기로 녹두묵을 많이 만들어 내어 유명했던 곳이다. 이곳의 샘물은 그 어느 곳보다 물맛이 좋아 녹두를 갈거나, 갈아놓은 녹두를 묵으로 만들 때 치는 샘물로 적격이라 간을 하지 않아도 좋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쌍시암이 묵시암"이라고 불렸던 것도 녹두묵 외에도 도토리묵 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주천을 따라 오무가리로 유명한 오목교 방향으로 가다보면 "완판본문학관"이 있다.
전주는 한지의 고향이지만 조신시대 출판의 중심지로서도 유명했다. 전주에서 만들어진 책과 그 판본을'전주'라는 지명이 가진 의미 중 하나인 '완전할 완(完)'자를 써 '완판본'이라 했다. 조선시대 목판 인쇄는 서울의 '경판' 경기도 안성의 '안성판', 대구 '달성판' 그리고 전주의 '완판'이 있다. 물론 전국 최대 규모였으며 종류 또한 제일 많았다.
이러한 완판본은 16세기 후반부터 우리나라 출판문화를 보급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주로 중앙관서와 감영, 향교, 서원 등이 책의 간행을 주관했다. 특히 상업적인 판매를 목적으로 출판된 완판 방각본은 전국적인 보급망을 가추고 서울의 경판본과 경쟁을 했다.
왜 완판본이 성행을 했을까. 첫번째 이유는 전라감영에 있다. 전라도와 제주도를 관할하던 전라감영이 출판물이 많았다. 또 책 수요층이 증가해 서적 시장이 활성화 됐고 한글 소설을 통한 한글 대중화 교육이 활발했다.
완판본의 특징은 반듯하게 쓴 해서체로 쓰였다는 점이다. 정자로 글자를 새겼기에 소설을 읽으며 한글을 공부할 수 있다. 한글의 보급과 교육에 역할을 했다는 반증이다. 실제로 한글 고전소설과 언삼국지의 첫 쪽에는 '가갸거겨'로 시작하는 '반절표'가 있다. 책 한권을 읽으면 한글 교육은 웬만히 이뤄진다. 질 좋은 종이가 풍족했던 것도 출판이 활발할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다.
한글 고전소설의 경우 완판본은 84장본이 많다. 하지만 경판본은 20장에서 30장본이 대부분이다. 한지 제작 기술이 발달했기에 종이가 풍부했다. 이런 완판본의 고장 전주에 '완판본 문화관'이 들어서 잊혀져가는 옛 명성을 이어간다. 이곳에는 전라감영에서 출간된 서적과 목판, 전국적 명성을 획득했던 완판본 방각본 한글소설들, 완판본으로 이어져 내려왔던 선비와 학자들의 지적 전통이 소개된다. 뿐만 아니다. 명심보감의 '수신'편을 목판으로한 인쇄체험장을 마련하였다.
해제집은 전라감영에서 간행했던 전라감영본, 판매용 책인 완판방각본, 한글고전소설본 등으로 완판본의 꽃이다.
전주한옥마을 태조로를 따라 가다보면 은행로사거리에서 은행로 방향으로 양궁체험장이 있는데,
그안쪽으로 오늘의 목적지 음식모양의 돌이 전시되어 있는,
"닥터. 곽 갤러리"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런지 2,000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닥터 곽 갤러리 소장가님이 40여년 동안 수집한 다양한 음식모양의 돌과 엔틱 도자기로 전시공간을 체웠다.
벗섯인가 생각했는데 초코파이 모양의 돌이란다.
먹음직스럽게 접시에 올려진 음식들은 모두 돌이다.
장어
잎과 즐기만 빼고 나머지는 돌이다.
잔치상을 받는 포토존이 있었 한장의 사진을 남긴다.
돼지고기도 모두 돌이다.
도자기속에 엽전은 중국에서 구입하였다 한다.
세상은 넓고, 신비한것도 많고, 볼것도 많고, 또 그것을 수집하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양의 돌모양의 음식을 가까이 볼수 있게 전시공간을 넓히면 관람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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