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상도 여행

소수서원

2024년 5월 30일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자 국가가 공인한 첫 사립 교육기관인 소수서원입니다. 경상북도 영주에 있는 소수서원은 풍기군수였던 신재 주세붕이 고려 말 유학자 안향선생의 연고지에 1542년(중종 37년)에 사묘를 세워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다음해에 학사를 건립하고 백운동서원을 세운데서 비롯되었다. 이후 1550년 (명종 5년)에 퇴계 이황(이황)선생이 풍기군수로 재임하면서 나라에 건의, 명종임금으로부터 소수서원이란 사액을 받게 된 최초의 사액서원이며 1871년 (고종 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철폐를 면한 47서원의 하나로 지금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소수서원은 다른 8곳의 서원과 함께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으로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 곳입니다.

 

 

 

 

소수서원매표소 09시부터 관람이 허락되며 3,000원의 입장료가 있습니다.
소수서원에 들어가면 길 양쪽으로 소나무가 울창하며, 수백 그루의 적송들이 서원을 에워싸듯 들어서 있다. 유생들이 소나무의 장엄한 기상을 닮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적송들을 심었다고 합니다. 겨울을 이겨 내는 소나무처럼 인생의 어려움을 이겨 내고 참선비가 되라는 의미로 후대 사람들은 이 소나무를 ‘학자수’라고 부른답니다.
소나무와 어우러진 영귀봉 그속에 500년을 살고있는 은행나무등 한폭의 그림입니다.
소나무길이 끝나는 우측으로 숙수사당간지주가 보입니다. 보물 제59호인 숙수사지 당간지주를 통해 이곳에 숙수사라는 절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소수서원 초입에 봉긋 솟은 둔덕은 마치 거북이 알을 품은 형상이라 해 영귀봉이라고 이름 붙은 명당이랍니다.
영귀봉에 올라가 담장안을 들려다 봅니다.
소수서원 입구 지도문 오른쪽에 위치한 경렴정이며, 지도문 바로 옆으로 제사에 쓸 동물이 신성한지의 여부를 심사하는 성생단이다.
죽계수가 내려다보이는 경렴정은 주세붕이 1543년 세운 정자로 내부에는 주세붕과 퇴계 이황 등 당대 묵객의 시판이 걸려 있다. 유생들이 자연을 벗 삼아 시를 짓고 학문을 토론하던 곳이다. 경렴정(景濂亭) 현판은 퇴계의 글씨다.
서원 옆을 흐르는 죽계천 건너편에 `취한대` 좌측에 ‘경(敬)’자와 ‘백운동(白雲洞)’이 새겨진 바위를 발견할 수가 있다.
주세붕이 쓴 것으로 알려진 경자바위다. 주자의 해석에 따르면, 매순간 주어진 현실에 생각을 집중해 허투른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으로 일상생활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지도문을 들어서면 강당인 명륜당 앞에 백운동 현판이 걸려 있다. 명륜당 내부 중앙에는 소수서원이라는 사액현판이 보인다. 조선왕조 13대 명종 임금의 어필이다. 사방에 문이 달려 있고, 건물 둘레에 너비 1m 정도의 툇마루를 빙 둘러 설치했다.
사진은 명륜당 좌측의 모습으로 문성공묘의 사당이다. 다른 서원들과는 달리 특이하다. 전학후묘의 서원건축이 아니라 동학서묘의 배치로 평지의 마당 구조를 자연스럽게 따른 것이란다.
제향기능의 사당은 안향, 안축, 안보, 주세붕의 위패를 함께 봉안하고 있으며, 규모는 정면3칸, 측면3칸의 맞배집으로 장대석으로 마무리한 낮은 기단위에 세웠다.
사당뒤로 제기를 보관하고 재물을 준비하던 전사청 과 안향과 주세붕 등의 초상을 모신 영정각이 있다. 서원에 영정각이 있는 것이 특이하다. 영정각 앞에는 조그마한 테두리 안에 둘 두 개가 겹쳐 있는 해시계 일영대가 있다. 선인들은 맑은 날, 일영대 가운데 구멍에 막대기를 꽂아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고 시간을 가늠했단다.
영정각 내부에는 안향 선생을 비롯 여섯분의 초상화를 봉안하였다. 안향의 초상화는 현존하는 초상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고려시대의 초상화 화풍을 짐작하게 하는 작품이다(국보 제111호 가운데 우측 초상화).
고려 말 학자였던 안향(1243∼1306) 선생은 1289년 당시 세자였던 충선왕을 수행해 원나라 수도 연경을 방문해 주자의 저서를 필사하고, 공자의 초상을 모사한 다음 귀국해 고려 주자학을 확립하면서 조선 성리학의 기초를 마련한 유학자로 알려져 있다.

 

강학당 뒤쪽의 장서각은 서원의 서적과 서원에서 출판한 판각을 보관했던 곳이며, 우측 건물은 일신재·직방재는 원장, 교수 및 유사(단체의 사무를 맡아보는 직무)의 집무실 겸 숙소다. 하나의 건물로 이루어졌고 편액으로 두 곳을 구분하고 있다.
직방재 우측으로 학구재·지락재가 나온다. 유생들이 기거하며 공부하던 기숙사다. 학구재는 ‘학문을 구한다’라는 뜻을, 지락재는 ‘배움의 깊이를 더하면 즐거움에 이른다’는 뜻을 담고 있다. 두 건물의 입면이 ‘工’자 형태로 지어졌는데, ‘工’은 공부의 앞글자인 ‘공’을 따온 것으로 유생들의 배움을 장려하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단다.
소수서원 관리사무동으로 들어가는 협문.
소수서원 사료관.
사료관은 소수서원에 대한 관람객에게 이해를 돕고자 관련자료를 정리해 둔 곳으로 소수서원의 역사와 전통 및 주요 배출인물들에 대해 설명하였고, 관련 유물들도 전시하고 있다.
관리사무소와 충효교육관.
서원을 관리하시는 분들의 숙소 고직사.
둘레길은 소수서원 입구인 매표소에서 시작되어 취한대-광풍대-소수박물관-영귀봉-소혼대를 잇는 약 1.3㎞ 구간이다. 일반적으로 문화재 관람을 하게 되면 입구에서 출구까지 내부 동선 위주로 한 방향으로만 관람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색다른 시각으로 서원을 조망할 수 있는 특별함 과 서원 주변을 둘러 볼수 있다.
물흐름을 완만하게 하는 죽계천 제방입니다.
제방위 돌다리를 건너서 취한대로 갑니다. 돌다리도 두둘겨 보랬는데 딱 봐도 튼튼하게 생겼습니다.
돌다리에서 바라보는 전경이다. 서원경관은 죽계를 사이에 두고 안과 밖에서 번갈아 보면 또 다른 느낌이다.
죽계천의 돌다리를 건너면 취한대가 나오는데, 취한대 이름은 연화산의 푸른 기운과 죽계의 맑고 시원한 물빛에 취하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는 뜻에서 퇴계 이황이 지었단다.
취한대에서 죽계천 건너 서원의 풍경이 다가온다.
취한대에서 둘레길을 따라 올라가면 광풍정이 나온다.
광풍정 앞 절벽이 광풍대다.
광풍대에서 보는 죽계천의 경치입니다. 앞쪽으로 다리는 죽계교입니다.
둘레길과 인접한 선비촌으로 들어왔습니다. 영주 선비촌은 선현들의 학문 탐구의 장소 및 전통 생활공간을 재현한 곳으로, 와가 7가구, 초가 5가구, 누각 1동, 정사 2동, 정려각 2동, 성황당, 곳집 ,원두막 등이 구성되어 있으며, 마을 내에서 하룻밤 머무르며 옛 선비들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는 한옥 숙박체험과 전통문화체험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영주지역의 선비들이 실제로 살았던 생활공간을 그대로 복원하여 놓았습니다.
김상진 가옥
해우당 고택
우금촌 두암고택
인동장씨 종택
복원된 집앞으로 안내판을 만들어 고택의 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돌아다니다 보니 선비촌입구 까지 왔습니다. 여러지역의 고택들을 한 곳에 재현하여 다양한 고가들을 볼 수 있었던 점이 좋았습니다.
다시 둘레길로 접어들어 죽계교를 건너가고 있습니다.
유생들이 공부하다 휴식을 취했다는 인공연못 소수서원 탁청지입니다.
탁청지와 소수서원 담장사이 둘레길입니다. 취한대길과 이곳 길이 제일 마음에 드는 길입니다.
둘레길은 경렴정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원 주변의 경관 가치를 극대화한 소수서원만이 갖춘 특별함을 가벼운 산책을 통해 문화재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경상도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경새재  (7) 2024.09.29
봉화 분천역 산타마을  (1) 2024.09.29
부석사  (28) 2024.07.05
무섬마을  (27) 2024.07.04
봉정사  (25) 2024.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