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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여행

쌍벽루와 강정리 근대한옥

2024년 11월 15일

임실 관촌면 방수리에서 진안 마령면 강정리까지는 10km의 섬진강 물길이 감입곡류 물돌이동으로 7번이나 휘돌아 흐르는 험애 지형이다. 그 섬진강 상류지역인 진안 마령면 강정리 강변에 있는 정자 쌍벽루(雙碧樓)와 강정리 근대한옥을 관람한다.

 

 

 

진안 마령사거리에서 강정교차로 사이에 있는 쌍벽루주차장이다. 쌍벽루로 오르는 산비탈 아래에 집채만 한 역암에 '삼계석문(三溪石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조선 선조 때인 1590년에 신라 최치원의 글씨를 탁본해 새긴 것이다. `삼계석문`은 최치원이 태산 군수를 지냈다는 이 지역에서 그를 흠모하며 후대에 새긴 글로 추정된다.
쌍벽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임진로를 따라가는 강변의 산허리에 위치한다.
이곳은 백운동 계곡의 백운천, 마이산의 은천과 주화산의 세동천 등 세 하천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산기슭의 퇴적암 위에 세워진 정자는 푸른 강물과 푸른 소나무가 아름다운 풍경이어서 쌍벽루라 하였다.
쌍벽루로 올라가는 진입부가 밭으로 밭고랑을 따라 안내판이 있는 입구로 접근해야 한다.
마을 이름을 따서 깎아지른 직벽의 바위에 붉은 글씨로 ‘강정대(江亭臺)’라 써놓았다.
강정대 글씨 옆에는 '都隱先生杖屨之臺(도은선생장구지대), 葵庵先生考槃之臺(규암선생고반지대)'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장구와 고반은 은자가 숨어 살며 머물렀던 자취를 비유하는 관용적인 어휘이다. 고려 말과 조선 초기인 600여 년 전에 도은 선생이 짚신을 신고 지팡이를 짚으며 오른 누대이다. 조선 중기인 400여 년 전에 규암 선생이 은거한 개울가의 오두막이라는 의미이다.
쌍벽루 절벽의 역암 동굴 형상 타포니지역에 마을에서 토종벌을 사육한다.
바위 위에다 1942년 참봉벼슬을 했던 이가 누각을 지어 올리고 ‘쌍벽루(雙碧樓)’란 편액을 걸었다.
누각 안에서 눈길을 끄는 건 나무로 깎아 대들보에 얹은 황룡과 청룡. 천장에서 용 두 마리가 두 눈을 부릅뜨고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예전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누각에서 바깥을 보는 경치보다 바위 아래에서 암벽 위의 누각을 올려다보는 쪽이 훨씬 더 근사하다.
쌍벽루가 있는 바위를 코앞에서 살펴보면 크고 작은 돌과 모래를 비벼놓은 것 같다. 마이산은 국내에서 보기 드물고 세계적인 규모의 역암산으로 역암이란 잔돌과 자갈, 때론 큰 바위까지 홍수에 쓸려내려 쌓인 뒤 땅속 깊은 곳에서 굳어 만들어진 암석을 말한다.
강정리는 마을 가운데로 물이 흘러 강창리(江昌里)라 부르다가 몇 차례 큰 수재를 겪은 뒤 ‘강정(江亭)’이라 마을 이름을 고쳤다. ‘강 강(江)’자 뒤에 ‘창성할 창(昌)’자 대신 ‘정자 정(亭)’자를 써서 ‘강에 있는 정자’를 이름으로 삼으면 행여나 마을이 물에 잠기는 일이 줄어들까 싶어서였단다.
강정리 근대 한옥은 집 주인 전영표는 풍수지리에 조예가 깊었으며 이 근처 최고의 명당에 지었다고 한다. 이 집터는 마이산 줄기의 광대봉을 주산으로 용두봉을 좌청룡, 성산을 우백호로 포근히 감싸 안은 자리에 있으며 내동산을 안산으로 한다. 앞에는 물이 흘러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명당으로 연화도수형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진안 8대 명당이라 한다. 2~3년전에는 `강정리 전영표가옥`으로 불렸었다.
빈집으로 관리가 안 되고 있는 50여 평의 대지에 동남향의 안채와 동쪽에 사랑채, 서쪽에 곳간채가 있다. 사랑채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1970년대에 이전하였단다. 마당에 정원이 있고 후면에 장독대가 있다.
사랑채 앞으로 자그마한 연못의 흔적이 있다. 정원으로 꾸몄지만 잡초에 분간하기가 힘들다.
집 구조는 기단 위에 덤벙 주초를 놓고 네모진 기둥을 세운 후 도리와 연결된다. 1층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서쪽에 부엌을 내고 옆으로 안방이 있다. 중앙 두 칸은 툇마루를 앞에 놓았고 동쪽으로는 반 칸 정도의 누마루가 깔렸다. 2층은 누에 치는 잠실이었다고 하는데,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동쪽 2칸은 유리창을 달았다.
사랑채
안채 마루.
안채 후측.
부엌문이 있는 측면.
곳간채
이 가옥은 농촌주택에서 보기 드문 2층 형식으로, 한식 민가의 건축 기술을 이용하여 검소하게 지은 건물로, 당시 상가 건물로 2층 건물을 많이 지었는데 이것이 농촌 지역의 주택 건축에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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