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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여행

백마고지전적지

2021년 5월 12일

고대산등산 후 금학산으로 가기전 잠시 백마고지역과 백마고지전적지를 답사한다.

 

백마고지역은 대한민국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에 위치한 경원선의 종착역이다. 경원선 복원 당시 기존 철원역 이 민통선 내부에 있어 민통선 밖의 철원읍 대마리에 이 역이 대체·신설되었다.
현재 백마고지역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심각단계로 해제시까지 잠정 중단으로 철로쪽으로는 들어 갈수 없다. 중단개시일 : 2019년9월18일 ~ 해제시 까지다.
역사는 지상 1층 규모의 지상역으로, 역 구내는 1면 1선의 승강장만 있을 뿐, 대피선이나 회차 시설은 없다. 승강장 북쪽 끝에는 철도중단점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으며, 본선은 승강장을 북쪽으로 조금 벗어난 지점에서 끊긴다.

 

백마고지역에서 1.7km떨어져 있는 백마고지전적지 전경이다. 전적지는 강원 철원군 철원읍 평화로 3591에 위치하고 있다.
주차장뒤쪽으로 철원 화살머리고지전투의 "기억의 종"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으며,
주차장 한 가운데 백마가 앞발을 들고 허공을 휘젓는 동상이 입구에서 반긴다.
`백마고지 전적비` 백마고지 전투는 한국전쟁(1950. 6·25 ~ 53. 7. 27)기간인 1952년 10월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3km 북방에 위치한 무명의 한 작은 고지를 놓고 한국군 보병 제 9사단(사단장 김종오)과 중공 제38군 3개사단이 전력을 기울여 쟁탈전을 벌인 끝에 우리국군의 승리로 매듭지어진 전투를 말한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0일 동안 해발이 불과 395m 밖에 되지 않는 고지 하나를 빼앗기 위해 아군과 적군 2만 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으며, 전투기간 중 발사한 포탄은 적측 5만5천발, 아군측 22만발이며,12차례의 공방전으로 24회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기도 했다. 혈전사투로 처절하게 변모한 산용(山容)이 흡사 백마가 누워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백마고지로 불리게 되었다고한다.
도열한 태극기가 펄럭이는 언덕길을 오르면 전몰자 이름이 빽빽이 새겨진 위령비와 분향소가 처연하게 다가 온다.
백마고지 위령비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희생된 아군과중공군 등 17,535명(아군3,146명, 중공군14,389명)의 영혼을 진혼하기 위하여 건립한 것으로, 회고의 장 · 기념의 장 · 다짐의 장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처절했던 격전의 현장을 기억하고자 건립되었다. '회고의장'에는 전사자를 추도하는 위령비와 분향소가, '기념의 장'에는 통일의 염원과 전승을 기념하는 전적비와 함께 자유의 종각이 건립되어 현재 국민의 안보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 당시 백마부대장이었던 김종오장군의 유품을 전시한 기념관. 코로나로 인해 기념관은 잠정 폐쇄된 상태다.
백마고지전투의 승리를 기리는 높이 50m 태극기 게양대와 충혼탑. 태극기 규격은 가로 18m, 세로 12m다.
태극기 게양대와 충혼탑뒤로 자유의 종각과 백마고지 조망대가 있다.
자유의 종각
조국의 통일의지를 다지기 위한 조망대.
조망대에 서자 백마고지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한적한 시골 풍경이다. 이렇게 평화로운 곳에서 한국전쟁 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다. 백마고지 바로 오른쪽으로 일명 ‘김일성고지’인 고암산의 암봉이 살짝 드러났다.
올해는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었던 6·25 전쟁의 71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러나 6·25가 지난 지 71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안보 의식이 점점 희미해져 간다. 세월은 모든 것을 망각하는가. 기억하는 이는 점점 세상을 등지고, 젊은이들은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를 되묻고 있다. 뻐꾸기 울음 소리가 논두렁에 내려앉는 풍경 속에서도 비극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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