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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여행

삼화사

2021년 7월 21일

두타산 베틀바위코스와 신선바위코스를 탐방하고 내려 오면서 답사한 삼화사와 무릉반석을 정리하여 본다. 무릉계곡은 동해시 두타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 한 약 4㎞에 달하는 계곡이다. 수백 명이 앉을 수 있는 너른 무릉반석과 호암소, 선녀탕, 장군바위, 쌍폭, 용추폭포 등 다양한 지형이 펼쳐져 동해안 제일의 산수라 할 정도로 자연경관이 아름답다.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에는 절이 들어 앉아있는데, 이곳 무릉계곡에도 삼화사가 자리하고 있다. 

 

무릉계곡매표소를 지나서 계곡을 따라 몇 백미터 올라 가며는 `두타산삼화사`라고 쓰인 편액이 걸려있는 삼화사일주문이 나온다. 일주문은 삼화사로 들어서는 두타산 무릉계곡 초입에 자리하고 있으며 절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다.
일주문을 지나서 무릉반석이 보이는 곳에 금란정(金蘭亭)이 자리하고 있으며, 둥근 화강석 초석 위에 목조 원기둥을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규모로, 겹처마 팔작 기와 지붕양식의 건축물이다. 앞면에는 '금란정'이라는 현판이, 옆면에는 '경중별업'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금란정 기둥에 걸려있는 주련의 해석.

 

금강산화첩(금강사군첩)은 김홍도가 44세 때 김응환과 함께 다닌 금강산 및 관동8경 지역을 그린 것으로 그 중 무릉계곡에 방문하여 한 폭의 그림이 `무릉계`다.
금란정 옆 안내판에 김홍도가 이곳에 방문 한 걸 증명한다.
무릉반석은 1,500여 평이나 되는 하나의 흰돌로 평평하게 이뤄져 있어 주변의 기암괴석과 함께 절경의 장관을 연출한다. 
이렇게 넓은 암반은 자연의 경이로움까지 느끼게 함며, 암석에 수 놓은 듯 새겨진 갖가지 석각은 해석하는 재미와 함께 옛 선비들의 풍류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대표적인 석각은 ‘무릉선원武陵仙源’, ‘중대천석中臺泉石’, ‘두타동천頭陀洞天’이다. 그 아래에 ‘옥호거사서신미중춘玉壺居士書辛未仲春’이 있다. 옥호거사가 신미년 봄에 글을 남겼다는 의미다. 무릉선원은 도교 신선사상을, 중대천석은 유교사상을, 두타동천은 불교사상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 석각은 봉래 양사언이 강릉부사 재직(1571~1576) 기간에 전임 정두형 부사의 부친상 관계로 신미년(1571)에 광천을 방문했을 때 무릉계곡에 와서 썼다는 설이 있고, 옥호자 정하언이 삼척부사 재직(1750~1752) 기간 중인 신미년(1751)에 무릉계곡을 방문해서 남겼다는 설도 있다.
무릉반석에서 수목드라마 `마더`의 촬영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무릉반석 위쪽으로 용오름길이 있다는 안내판.
금란정에서 조금 올라 가며는 다리를 건너 삼화사가 나온다.
삼화사 안내도.

 

삼화사 무향각(無香閣). 불교서적과 불구 등을 판매하는 매점이며 전통 차 향기가 가득한 곳이다. 삼화사 천왕문 좌측으로 있는 당우이다.
삼화사 천왕문(天王門). 사천왕은 고대 인도종교에서 숭앙하였던 귀신들의 왕이었으나 부처님께 귀의하여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천왕들은 수미산 중턱 지점의 동서남북 사천에서 그들의 무리와 함께 불법을 수호하고 인간의 선악을 관찰한다고 한다.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 남쪽을 지키는 중장천왕,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이 있다.
천왕문 안으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삼층석탑과 적광전이, 우측으로 범종루와 육화료, 좌측으로 심검단이 자리한다.
삼화사심검당
삼화사육화료
삼화사 삼층석탑은 높이 4.8m. 보물 제1277호. 본래 무릉계곡 어귀에 들어서기 전 평지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1977년 삼화사 일대가 쌍용양회 동해공장의 채광권 내에 들어가게 되자 현재 위치로 옮기게 된 것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삼화사 범종루(梵鐘漏). 범종루는 다른 말로 종각, 범종각 또는 종루라고 하는데 범종과 법고, 목어, 운판 등 불교의 사물을 걸어놓는 누각을 말한다. 
육화료 (六和寮)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당우로 삼화사의 요사채이며 종무소로 사용하고 있다.
적광전 (寂光殿) 삼화사의 본전인 중심법당으로 정면 5칸, 측명 3칸의 팔작지붕에 다포계 양식으로 세워졌으며 갖가지 문양이 어우러진 단청이 화려한 큰 법당이다. 
적광전 경내에는 국가지정보물인 철조노사나좌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불상 위쪽으로는 화려한 닫집이 조성되어 있고 팔작지붕의 추녀모서리는 콩포를 돌출시켜 연꽃이 환하게 피어난 느낌을 준다.
철조노사나좌불(보물제1292호) 이 불상은 신라 말부터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이는 삼화사 개창 초기 이후에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삼화사 철불은 약사불로 전해져 왔으며 오랜 수난의 역사와 함께 많이 훼손되었으나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매우 뛰어나다.

 

약사전(藥師殿) 1998년 신축하였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축물로 약사여래 부처님과 협시불을 모신 법당이다. 주존인 약사여래는, 동방의 정유리세계에 교주로 머물고 있는 부처님으로 중생을 모든 변고에서 구하고, 무명의 고질까지도 치유하여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약사유리광여래로 보통 약사여래, 또는 약사불이라고 부르며 경전에서는 병을 고쳐주는 위대한 부처란 뜻으로 대의왕불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삼성각(三聖閣). 삼성각은 독성 나반존자 산신님 칠성님을 함께 모신 곳이다. 나반존자는 남인도 천태산에서 홀로 선정을 닦아 십이연기 불교 근본 교리 중 하나를 깨달은 성자로 우리나라에서는 단군을 신격한 것으로 신앙되고 있다. 삼성각 좌측 앞쪽으로 극락전(極樂殿)은 서방극락정토(西方極樂淨土)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사찰 당우 중의 하나이며 주불인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보살로 봉안되어 있다.
삼화사는 인근 천은사, 영은사, 지상사 등과 더불어 영동 남부지역의 중심 사찰로 선종의 종풍을 가진 깊은 역사성을 갖고 있으며 삼공암, 측연대, 중대사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이 사찰과 관련하여서는 세가지 창건 설화가 전해지고 있으며, 삼화사사직, 진주지 등에 의하면, 신라 선덕왕 11년(642)에 지장율사가 흑연대를 창건한 것이 그 시초가 되었다고 하나 신빙성은 없단다. 이 사찰은 본래 동쪽 약 1.3km의 반릉 부근에 있었는데, 여러 차례 화재로 인한 소실과 중창을 거듭한 삼화사는 1905년에 삼척지방 의병들의 거점으로 이용되었으며, 1906년에 일본은 의병의 거점 파괴라는 이유를 붙여 대웅전, 선당 등 200여 칸에 이르는 건물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그 이듬해인 1908년 대웅전. 요사채. 칠성당 등을 다시 건립하여 유지해오다 1977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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