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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여행

신원사 중악단

2021년 7월 2일

신원사 대웅전에서 우측으로 약 50여m 거리에 한국 산악 신앙의 제단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계룡산 중악단'이 있는데 보물 제1293호다.  다름 아닌 계룡산신을 모셔 놓은 곳이다. 유교를 지배이념으로 하였던 조선왕조 때 세운 묘향산의 상악단과 지리산의 하악단, 그리고 계룡산 신원사의 중악단을 삼악이라 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계룡산에 있는 중악단만 남았다. 중악단은 1394년(태조 3년)에 세워진 산신각이다. 산신은 원래 산하대지의 국토를 수호하던 신이며 민족의 정기의 고양과 모든 백성의 합일 및 번영을 기원하던 팔관회를 후에 산신제라 부르게 된 것이란다. 

계룡산신원사 오층석탑에서 바라보는 중악단.
전체적으로 대문과 중문, 본전의 일직선 축과 좌우대칭에 의한 배치로 인해 엄숙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중악단 대문간채. 신원사는 백제 의자왕 때인 651년 고구려 출신 승려인 보덕화상이 창건한 이후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사(王師) 무학대사에 의해 크게 중창됐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무학대사가 이성계에게 이곳에 산신각(현재 중악단)을 지어 계룡산신에게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말했다는 전설도 뒤따른다.  그후 쇠퇴 하다가 고종과 명성황후의 배려로 다시 지어진 계룡산 중악단에서 명성황후가 이곳 계룡산신에게 기도해 아들(순종)을 낳은 것으로 전해진다.
대문깐채 안쪽으로 중문까지 이어지는 곳에 좌 우로 2칸의 요사채를 두었다.
중악단 중문간채
중문간채를 중악단에서 바라본 전경.
궁궐양식을 그대로 축소하여 만든 중악단 건물 안에는 산신도가 모셔져 있다. 중악단의 현판은 조선 후기 문신 이중하(1846∼1917)가 쓴 것이라고 한다. 건물은 5m의 높은 돌기단 위에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조선 후기의 특징적인 수법으로 조각·장식하여 화려하고 위엄있게 하였다. 또한 각 지붕 위에는 각각 7개씩 조각상을 배치하여 궁궐의 전각이나 문루 또는 도성의 문루에서 사용하던 기법을 쓴 점도 특이하다.
내부 중앙 뒤쪽에 단을 마련하고, 단 위에 계룡산신의 신위와 영정을 모셔 두었다.
묘향산의 상악단과 지리산의 하악단이 현재 남아있지 않은 것에 비해 중악단은 잘 보존되어 있어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산신에게 제사지냈던 유일한 유적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중악단에서 바라본 쌀개봉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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