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여행 준경묘 및 재실 안골태호 2021. 9. 7. 19:17 2021년 8월 25일 오락가락 하던 비는 결국 장대비로 변하여 예정에도 없던 삼척종합박물관으로 피신하였다. 그곳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비는 그치고 잔뜩 찌푸린 날씨로 변했다. 약 3.8km떨어진 준경묘로 향한다. 강원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마을 준경묘로 가는 입구에 제법 넓은 주차장이 자리하고 있다. 약 2km떨어져 있는 준경묘와 숭레문복원 소나무 벌채지까지 답사하기로 한다. 입구부터 경사는 가파르다. 시멘트로 포장된 바닥은 여름장마로 인하여 물을 잔뜩 머금었다. ‘옛길’이라는 표지판과 함께 계단난간이 보여 갈때는 옛길로 돌아 올때는 임도로 오기로 하고 옛길로 올라 간다. 옛길과 임도가 합해지는 고개마루에 도착을 하여 잠시 땀을 식힌다. 주변을 둘러보니 듬성듬성 서 있는 황장목이라 불리는 궁궐용 소나무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이후 포장길이 끝나면서 경사도 끝나고 이내 평평한 흙길이 나타났다. 거진 준경묘에 다달을쯤 우측으로 돌계단이 보이고 철재난간에 미인송이 보인다. 속리산 정이품송과 혼례 한 소나무다. 매끈하게 뻗어 목이 아플 정도로 고개를 젖혀야 시선이 꼭대기에 닿는다. 혼인 당시 수령이 95년, 키 32m, 가슴높이 둘레 2.1m였다. 혼인목 선발 과정은 왕비를 간택하는 것처럼 까다로웠다. 수형이 빼어난 전국의 524그루 소나무 중에서도 형질이 우수한 것으로 판명된 나무를 골랐다. 조선의 뿌리에 닿아있다는 상징성도 고려됐다. 나무 혼례식은 정이품송의 꽃가루를 채취해 미인송과 인공 교배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이렇게 얻은 후계 나무 중 DNA 분석과 유전자 다양성 등을 평가해 58그루를 ‘장자목(長子木)’으로 명명했단다. 미인송을 본후 조금더 가다보니 믿기지 않을 만큼 넓은 평지가 나타나면서 옅은 안개 속으로 멀리 홍살문이 보였다.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터에 재각과 비각 그리고 나지막한 무덤이 그림처럼 조화를 이루며 자리잡고 있다. 아!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인 이양무 장군의 무덤이다. 고려 말 이씨 집안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전주에서 삼척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그 무렵 5대조 어른의 상을 당했고 묏자리를 찾아 다녔다. 지나가던 스님이 “대지로다. 길지로다. 왕손이 나올 곳이로다”라는 혼잣말을 하는 것을 우연히 멀리서 귀동냥으로 듣게 된다. 장례 후 몇 년만에 다시 식솔들을 데리고 또 함경도로 옮겨가야 했다. 자연히 묏자리는 잊혀질 수밖에 없다. 조선건국 이후 조정에서 뿌리찾기 차원에서 그 자리를 찾고자 나섰다. 하지만 이미 몇몇 자리와 함께 여러 가지로 말이 분분한지라 결정을 미루어야만 했다. 묘역 내에는 봉분, 제각, 비각 등이 있고 수라방과 수복방 등의 주초석이 남아있다. 왕조의 기운이 서린 샘물이라는 안내문이 적힌 진응수는 줄기차게 나오고 있다. 산 능선의 기세가 왕성해 지상으로 분출하는 물이라 설명한다. 1899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지 3년째 되던 해다. 조선왕조는 이미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국호를 바꾼 뒤 시도한 갖가지 제도 개선은 구호에 그칠 뿐이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조상의 음덕에 기대고자 한 것인가? 주자가례에 따라 이성계 이전의 4대조까지 위패는 이미 종묘 영녕전에 모셔져 있다. 그럼에도 날로 쇠약해지는 국운을 상승시키는 비책을 찾은 것인가? 드디어 고종에 의해 이성계 5대 조부모 무덤 위치의 논란에 대한 종지부를 찍고서 성역화 작업이 이루어졌다. 준경묘(濬慶墓), 영경묘(永慶墓)라는 왕릉에 준하는 이름을 부여했다. 조선개국 500년 만의 일이다. 그 과정을 기록하고 의궤까지 남겼다. 하지만 처방이 너무 늦었던 모양이다. 선대의 묘를 조성 한 후 11년 뒤 조선왕조는 문을 닫았다. 그럼에도 왕릉급 지위를 부여받은 후 120여년 동안 지역사회의 성지로 자리매김되었고 종친들과 주민들의 관심과 보호를 받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곳 준경묘는 풍수적으로 대단한 명당이어서 묘 자체보다 묘의 뒤쪽으로 올라가 좌향을 살펴보는 것이 답사의 중요한 포인트다. 묘 뒤에서 좌청룡 우백호 그리고 안산과 조산 등을 따져보아야 하는데 지식이 부족한 나로서는 그냥 답사만 한다. 풍수전문가들은 주변 산들이 성곽처럼 나성을 이루고 높은 산으로 이어지는 혈이 천궁과 같으며 혈 앞으로 천지수가 흘러 천교혈(天巧穴)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천하 명당이라는 것이다. 목조(이안사)가 부친인 이양무의 묘를 조성하는 과정이 담겨있는 백우금관(白牛金棺) 전설을 비롯하여 풍수지리적으로 준경묘 앞을 일자(一字)로 가로 지르는 봉우리가 다섯 개가 있어 조선왕조가 500여년간 존속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며, 준경묘 앞의 봉우리가 좌측보다 우측이 높아 왕위는 적장자보다는 차자, 방계가 계승한 경우가 많았다는 등의 이야기가 민간에 전해져 오고 있다. 금강송을 보기 위해 준경묘 좌측 산속으로 들어간다. 전체적으로 소나무들이 잘 자라 쭉쭉 하늘로 뻗어 있지만 일부 소나무 아랫부분에 상처가 좀 나 있다. 일제강점기 때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칼집을 낸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이렇게 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준경묘에서 400여 미터 오르니 능선에 도착을 한다. 거대한 소나무가 있는데, 이 금강송이 대왕소나무인지 모르겠다. 반대쪽에는 숭례문복원 소나무 벌채지가 보이다. 준경묘 입구 활기마을의 성황당. 황제의 기운, '황기'가 변해서 활기리가 됐다고 전해진다. 준경묘 재실주차장에 있는 활기리 성황당 준경묘 재실 입구. 준경묘 재실 준경묘 재실의 굴뚝을 사각형 나무로 만들고 덮개까지 씌웠다. 워낙 특이한 모습이다. 공유하기 게시글 관리 궁금하면 가보자 '강원도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덕봉산 (0) 2021.09.13 영경묘 (0) 2021.09.11 강원도 종합박물관 (0) 2021.09.05 삼척(무건리) 이끼폭포 (0) 2021.08.30 미인폭포 (0) 2021.08.14 '강원도 여행' Related Articles 덕봉산 영경묘 강원도 종합박물관 삼척(무건리) 이끼폭포